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전은비
저자는 '재난 복구 전문가'다. 다소 낯선 직함이다. 불이 꺼지고, 카메라가 떠나고, 세상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한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 망자의 신원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유류품을 어떤 상자에 담아 유가족에게 전할지 고민하고, 따뜻한 음료 한 잔을 건네는 사람. 저자는 바로 그 이후, 먼지가 가라앉은 뒤의 상황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인물이다.
저자가 책에서 가장 단호하게 강조하는 원칙 중 하나가 있다. 유가족에게는 절대로 선의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책에는 실제 사례가 등장한다. 한 어머니는 아들이 충돌 순간에 자고 있었다는 말을 전달받았다. 고통을 줄여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이미 상실의 고통 속에 있던 어머니는 거짓말까지 더해진 배신감을 감당해야 했다. 저자는 진실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유가족이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알아야할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특별히 와닿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세월호, 이태원, 그리고 무안항공 참사를 겪었다. 매번 슬퍼했고, 다짐했고, 그리고 조금씩 잊었다. 저자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묻는다. 우리는 단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복구'해본 적이 있느냐고. 재난 이후 무너진 삶을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지 않았느냐고.
이 질문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재난 이후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제도와 정책은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를 함께 묻는다. 재난 복구는 담당 부서 하나의 소관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임을 이 책은 차분하고 단호하게 일깨운다.
상실을 겪어본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유가족들이 있다. 먼지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 먼지 속에서 어떻게 존엄을 지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가장 인간적인 언어로 답해준다.
저자 소개 (저자: 루시 이스트호프)
영국의 재난 복구 전문가로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여덟살 때 처음으로 재난 현장을 지나며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열살 때는 집 근처에서 힐스버러 참사가 일어났다. “누구든 해결을 해야지.” 아버지의 울분 섞인 고함을 마음에 담아둔 뒤, 10대 때부터 재난과 사회적 대의에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다. 케니언 인터내셔널 응급 서비스에서 재난 분야 커리어를 시작하여 20여년 이상 인도양 지진해일, 9·11 테러, 발리 폭탄 테러, 런던 7·7 테러, 그렌펠타워 화재 등 세계 곳곳의 재난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편, 비상 계획 및 재난 대응 분야에서 열정적이고도 사려 깊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는 더럼대학교 위기관리실천 학과 교수이자 ‘애프터 디재스터 네트워크’(After Disaster Network) 공동 창립자, 바스대학교 죽음과 사회 센터(the Centre for Death and Society)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 및 팬데믹(mass fatalities and pandemics) 분야 펠로우, 뉴질랜드 매시대학교 협동재난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도착
1장 계획하는 사람
2장 나쁜 별
3장 푸르른 들판에서
4장 박싱데이
5장 44분의 대혼란
6장 히라이스
7장 작은 상실들
8장 공포
9장 유령 열차
10장 해바라기
11장 롤러코스터
12장 믿음직한 두 손
13장 각본
14장 또 한마리 비둘기
15장 흰 국화
16장 종말
에필로그 / 시작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