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한민
지난 2월 10일, 한 60대 남성이 안락사(언론에서는 뜻이 약간 다른 존엄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를 목적으로 출국하려다 가족의 신고로 경찰에 제지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진단 후 5년 생존율이 약 40% 정도에 불과한 ‘폐 섬유증’을 진단받고 파리를 거쳐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로 가려 했다고 말했다.
2021년 서울대병원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민 76.3%가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 입법화에 찬성했고, 2022년 ‘조력존엄사법’이 국내 최초로 발의되었으나, 아직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아마도 삶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만큼 이루 말할 수 없는 신중한 법적,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락사는 논쟁적인 주제다. 안락사를 시행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지만,
네덜란드는 여전히 그것이 허용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안락사가 허용된다. - 7p
2002년 4월 1일,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엄밀하게 말하면 비범죄화)한 네덜란드는 1886년 형법 제정 이래로 ‘요청에 의한 생명 종결’과 ‘자살 조력’은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급격한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환자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요청에 의한 생명 종결’의 처벌 면죄를 검토했던 포스트마 사건(1973)과 같은 과거의 사건과 합법화 이후 발생했던 수많은 실제 안락사 실행 사례를 통해 네덜란드의 안락사 제도가 어떻게 진화됐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생명의 존엄성과 극심한 고통, 암, 노화, 치매, 정신질환 등과 그에 따른 법적, 윤리적 논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네덜란드의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안락사 합법화에 앞서 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참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고통은 무엇인가?’, ‘이런 고통을 끝나도록 돕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의사와 국가는 어디까지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1. 형법 제293조 제2항에서 말하는 적정 주의의무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의사는 다음의 것들을 행해야만 한다.
a. 환자의 요청이 자발적이고 충분히 숙고된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
b. 환자의 고통이 참을 수 없고 호전의 가망이 없음을 확인해야 한다.
c. 환자에게 본인의 상태와 예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d. 환자와 함께 해당 상황에서 합리적인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
e.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a)부터 (d)까지의 요건 충족 여부에 대해 서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독립적인 다른 의사 최소 한 명과 사전 협의해야 한다.
f. 환자의 생명 종결 또는 자살 조력을 시행함에 있어
의학적으로 충분한 주의와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34p
우리나라 최초의 안락사 사건이라 평가받는 2009년 ‘김 할머니 안락사 사건’ 이후 2018년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지만 약물 투여로 직접 생명을 단축시키는 적극적인 안락사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는 지금, 가장 먼저 안락사를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직접 겪어온 네덜란드 사례들은 우리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 소개 (저자: 마르틴 부이선)
Martin Buijsen
마르틴 부이선 교수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대학교(Erasmus University Rotterdam) 법과대학 및 보건정책관리대학에서 보건법(Health Law)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의료윤리, 생명법, 환자의 자기결정권, 안락사 제도, 원격의료 및 인공지능 시대의 헬스케어 거버넌스 등 보건의료 규범과 실제가 만나는 지점을 오랜 기간 탐구해 왔다. 본서 『우리에게 안락사가 온다』에서는 네덜란드 안락사 법제도의 역사와 최근 동향을 개관하고, 의사능력 상실자의 사전의향서, 비의료인에 의한 안락사, 삶이 완성되었다고 여기는 고령자의 요청 등 다양한 쟁점을 법제·윤리·정책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의사에게 부여되는 ‘특권적 연민’과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완결된 삶’이라는 두 개념의 충돌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의료·법학·윤리 분야 연구자뿐 아니라 의사, 간호사, 보건관리자, 정책입안자,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목차
서문 7
1장 안락사법과 그 기원 15
2장 네덜란드 안락사 시행의 동향 39
3장 의사능력이 없는 이를 위한 안락사 47
4장 비의료인에 의한 안락사 81
5장 연령 관련 조건들 107
6장 맺음말 129
주석 135
참고 자료 147
감사의 글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