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이슬비
나날이 살기 참 치열한 세상. 어린 학생들은 미리미리 자격증을 준비하고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스펙을 쌓으며 자기 계발을 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잘사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불안하고, 편안함에 이르지 못할까?
피곤에 찌들고 무기력감을 느낄 때 삶의 의지를 회복하기 위해 때때로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더위로 지친 어느 날 시원한 사이다를 한잔 마신 듯한 청량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버킷리스트가 자기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온라인에서 넘쳐나는 죽기 전 꼭 먹어야 할 음식, 입어야 할 옷, 가야 할 여행지와 마주치면서 뭔가에 홀린 듯 그저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 것이었다면 그 느낌은 다를 것이다. 삶의 청량감과 자유를 새롭게 느끼기보다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또 늘어난 새로운 숙제처럼 다가올 수 있다. 우연한 마주침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보다, 어느 날 갑자기 각종 상품으로 채워진 버킷리스트가 내 삶의 목적 자체가 되면서, 자유로운 삶의 선택은 이 버킷리스트라는 창살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P47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상품화된 사회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비 능력을 갖춰야 하는 분위기에 사실은 소비를 쉼으로 혼동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경쟁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안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잠식하는지, 소비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사람들의 이런 상태를 착각 노동이라는 판타지에 빠져 있다고 말하며 나와 사회가 공존하고, 빼앗긴 쉼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쉰다는 것은 단지 하던 일을 잠시 멈추는 상태가 아니다. 생각 없이 그저 때가 돼서 잠시 멈추는 것은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필요한 힘을 모으는 행위에 불과하다. 채찍질 당하는 노예도 그렇게 잠시 쉴 때가 있다. ‘잠시 멈춤’은 달리는 자동차를 계속 달리게 하도록 잠시 주유소에 정차해 연료를 주입하는 것과 같다. 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잠시 멈춰 힘을 모을 때에도 다시 시작할 일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그러한 때에도 머릿속에서 고민이 사라지지 않고 불안이 몸을 감싸고 있다면, 아무리 포근한 품속에서, 시원한 그늘 밑에서, 멋진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쉼은 아닐 것이다. P 161
진정한 쉼은 본인이 평온하고 존엄하다고 느끼는 안정된 상태라고 저자는 말한다. 외부의 강제성을 벗어나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기 존엄성을 가지고 스스로의 결정권은 온전히 쥐고 있을 때, 이때가 비로소 우리가 쉴 수 있는 시기이다. 나도 몰랐던 나의 ‘쉼’. 이 책을 통해 체크 해보길 권한다.
♣ 저자 소개 (저자: 이승원)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경기도 안양과 영국의 몇몇 작은 도시에서 살았던 시절을 빼고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멋진 사회복지사 아내,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음악을 공부하는 딸, 권투할 때가 가장 맘이 편하다는 아들, 치매 속에서도 늘 웃으시는 어머니, 큰 병을 이겨내고 있는 강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육상, 야구, 농구, 중창단, 교회 학생회 활동에 빠져 지냈으며, 이후 대학에서 철학, 종교학, 국제학, 정치학 등을 공부했다. 책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현장 경험을 하며 더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다. 한동안 생업으로 국회, 중간지원조직, 공공연구기관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주로 민주주의, 포퓰리즘, 도시 정치, 사회혁신, 세계 시민교육 등을 연구하고 관련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민주주의』(2014), 『커먼즈의 도전』(공저, 202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르네스토 라클라우·샹탈 무페, 2012),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샹탈 무페, 2019)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커먼즈 네트워크, 시시한 연구소,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등에서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활동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불광천에서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 북한산과 봉산 오르기, 드라마 보기, 동네 목욕탕 가기를 즐긴다.
♣ 목차
서문. 나무 아래 의자
1. 왜 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가?
불안이 희망을 잠식한다|왜 누군 잘 살기 위해 애쓰는데, 누군 삶을 포기하는가?|우울과 불안이 팽배한 ‘자살사회’|역설적 비극, ‘생계형 자살’|자유라는 겉옷을 입은 소비라는 욕망|버킷리스트로 둔갑한 상품 목록|상품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 상품이 될 때|미래를 저당 잡혀 오늘을 포기하다|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처럼|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욕망|실업자, 이생망과 N포 세대, 오늘날의 호모 사케르|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 아이러니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개인과 사회의 공멸|‘모두가 공범이다’, 집단적 익명에 의한 타살|살려달라고 말하니, 기다리라고 답한다|스스로 자원을 활용하고 관리하는 능력|자유롭고 존엄한 삶을 지속하기 위한 역량과 커먼즈|어떻게 존엄성을 지키며 살 것인가
2. 일과 소비에 대하여 착각하는 사람들
일이 욕망의 완성은 아니다|노동이 결핍을 해결해준다?, ‘착각 노동’ 판타지|노동의 소외, 사물화 그리고 인간의 소외|타인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나를 버리다|과잉 노동이 초래하는 결과|공공재의 회복과 일상의 간단한 동선: 공공의료와 예방의학의 사례|소비를 쉼으로 착각하는 현실
3. 우리는 언제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
통증의 기쁨, 불안의 슬픔|나와 타인의 통증에 공감하기|존재하기 위한 의지, 삶에 대한 의지|자기결정권이 자기존엄성이다|“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쉼은 수동적 상태가 아닌, 적극적 행위다|송철호와 이지안은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공생공락’을 위하여
4.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하여
‘오멜라스 사람들’이 사는 법|공터, 우연한 마주침, 다름과 새로움의 가능성|새로운 리듬의 변주, ‘정지 운동’| 거리로 나간 수많은 바틀비가 만들 세상
책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