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김정문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은 이 명언을 닮았다. 어느 페이지나 유쾌함이 가득하다.
직업은 현실적이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절실한 표현만큼, 우리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직업에 대해 끈임없는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이 곳에 있어도 될까, 이 직업을 계속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력하지만 즐길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점이 직업이 가진 암울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질적이다. 잘 나가던 직장을 아버지가 쓰러지신 사건으로 퇴사하고 아버지의 직업인 공구상을 물려받는다는 이야기. 가업을 물려받는다는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생소한 이야기. 공구를 판다는 겉으로는 명확하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투박한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는 작가의 의문으로 시작된다.
'어느 학원 강사의 '용접공' 발언이 한때 화제였다. 수학 가형 7등급은 결국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럴 거면 지이잉~ 용접 기술 배워 호주로 가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 그들은 남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자기 기술로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정년이 넘어서까지 일하고 있는데 어느 강사의 말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 p. 12
작가는 이 사건을 통해 책을 썼다고 했다. '공구상과 기술자도 그냥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직업'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던 작가의 이야기는 이런 진중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공구상이 가진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말하기 제법 망설여지는 장점이 하나 더 있긴 한데.... (트럭은) 정차가 편하다. 트럭은 업무상 정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점을 활용하여 화장실이 급할 때 정차하면 뭔가 죄책감이 덜하다. 그러나 절대! 아무나 막 하라고 권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해 마시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트럭을 바라보는 시각'이 때로 도움이 된다는 소리다.' - p. 22
'공구로운 일상'이라는 이름을 붙인 1장은 작가가 급작스럽게 공구상이 되면서 그린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기술자와 공구를 연결하는 공구상의 전문적 역할을 진중하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있는 1톤 트럭 찬양, 고객을 공구상에 머물게 하는 '믹스커피'의 매력, 입 거친 기술자들의 속내를 유쾌하게 들춰낸다. 단순히 공구상이 좋은 직업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작가는 우리에게 '직업을 즐기는 삶'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는 비웃는 '나까마*'라는 단어를 통해 오히려 공구상의 중요성을 말하는 작가는 직업이 가진 현실적인 딱딱함보다는 삶에 대한 유연함으로 직업이라는 일상에 지친 우리를 사로잡는다.
'PU 코팅 장갑 : 내가 가장 많이 쓰는 장갑이다. 일반 사람들이 의외로 모르는 장갑이기도 하다. 폴리에스테르 장갑에 폴리우레탄 코팅을 한 장갑이다. 이중 코팅 장갑과 가격은 비슷하고, 내구성이 좋고, 보다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 - p. 107
2장 '공구로운 사용 설명서'는 실생활에 쓰이는 다양한 공구의 역할과 장단점에 대해 작가의 경험을 더해 설명한다.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멋대로 쓰였던 다양한 공구의 역할에 대해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알려준다. 실용적이면서도 공구가 가진 섬세함, 공구를 다루는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지금, 고치고 직접 만들어서 쓰는 DIY의 즐거움을 공구를 고르면서 느껴보는 건 어떨까.
'나와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미래를 위한 시도이고, 이렇게 해야 우리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누릴 수 있는 공구상 생태계를 만든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어쩔 수 없이 물려받은 고장난 물건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고칠 수 있는 살림이다. 그렇게 흐름이 바뀌고 공기가 바뀌고 마침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나, 세상으로부터 떳떳하게 대우받는 공구상이기를 오늘도 바란다.' - p.202
직업과 일상에 지친 우리는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하고 고민한다. 그것이 정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공구상의 이야기를 통해 그 고민에 대한 유쾌한 위로를 받아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위로를 받고 내 삶의 즐거움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 작가가 말한 모름에서 비롯된 딱딱한 인식을 벗어나 서로의 직업이 가진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 나까마 : 중개상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단어.
♣ 저자 소개 (저자: 정재영)
공구 큐레이션 업체 ‘공구로운 생활’ CEO.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구상사를 물려받기 전엔 그래픽디자인 브랜드를 기획하고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화법도 요구 조건도 다른 밀레니얼 세대의 기술 친화적 삶을 위한 파트너로 산업용품의 정확한 사용법과 브랜드별 제품 차이를 알려주고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용품을 선별해 제공하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1. 공구로운 일상
공구 상가에 들어서다
1톤 트럭 찬양론
기술자들의 묘약, 믹스커피
국산의 느낌적인 느낌
공구가 산업용품이라고?
안 되면 사람 부르세요
사이즈를 알아보는 생존법
고속도로 노동스
입 거친 아저씨의 속사정
비가 내리고, 내 눈물도 흐르고
뭔가 다른 산업용품 거래
공구 상가의 자동차들
뭐 하는 사람인데요?
한식 뷔페 대예찬
당신과 공구 사이의 나까마
집들이 선물이 고민될 땐
제조업의 꽃, 용접
미수금의 미학
아버지와 공구상
2. 공구로운 사용 설명서
공구로운 생활의 시작, 안전복
실용성만 올스탯 찍은 안전화
코로나19의 파수꾼, 마스크
안전의 기본, 면장갑
테이프와 친해지기
토시는 미대생의 전유물이 아니고
소중한 눈을 위해, 보안경
소음 안전지대, 귀마개
이동 만물상, 공구 가방
후레쉬 대신 LED 작업등
셀프 인테리어의 출발선, 줄자
완벽한 측정 기사, 버니어캘리퍼스
1종 지레의 최고 발명품, 가위
잡고 비틀고 자르기, 펜치
단순하고 복잡한 나사못
안전하게 꽉 조이고 푸는 힘, 복스알
층간 소음을 줄이는 드라이버
공구의 꽃이 피었습니다, 전동공구
묵직하게 자르는 도끼
당기는 맛의 끝판왕, 톱
모난 돌도 미끈하게, 그라인더
공구의 아이콘, 망치와 장도리
DIY 고수를 가르는 시험지, 페인트
혼자는 안 돼요, 사다리
택배 기사의 산초 판사, 대차
방청윤활의 고유명사, WD-40
우리들의 일그러진 보루
속 시원한 자연의 힘, 에어 공구
홈 퍼니싱의 마무리, 수평기
덕질이 필요하다면, 공구함
알면 좋은 산업용품 용어
에필로그
부록
취급 주의
Q&A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