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유 희 원
이 책은 스스로를 기린 덕후라 칭하는 기린 덕후 과학자의 에세이, 혹은 기린 탐구서 그리고 기린 해부학자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최근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책들의 출판을 자주 보는데, 딱딱하고 이론적인 면에서의 직업 소개가 아니라 현장에 몸담고 있는 실무자의 생생한 증언이나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역시도 다소 낯선 기린 해부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기린 해부학자의 일상을 담고 있다. 저자 군지 메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기린을 가장 좋아했으며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기린 박사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린을 가장 좋아하는 저자는 기린 박사 중에서도 기린의 사체를 해부하는 기린 해부학자가 되었다.
“(p.51) 한번 해부를 시작하니, 그전의 불안한 마음 따위는 깨끗이 날아가 버리고 어느새 열중하고 있었다. 혐오감이나 죄책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해부하는 동물들은 질병이나 사고로 죽거나 수명이 다해 죽은 것들이었고, 해부를 하기 위해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 죄책감이 들지 않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나 자극적이라 혐오를 느낄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적 호기심이 자극되고 채워져 가는 좋은 기분이 머릿속 가득 퍼져 나갔다. 해부를 하면 할수록 그 동물이 점점 좋아졌다.”
해부를 하면 할수록 그 동물이 점점 더 좋아졌다니! 저자에게 기린 사체를 해부하는 일은 죽음을 마주하는 일이 아닌 만남과 탐구, 발견을 위한 진지한 연구라는 것과 그에 대한 진심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책에서 저자는 벗어날 수 없는 제약 속에서 기본 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고 획득한 자신의 연구 결과가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고 전한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는 많지만, 중요한 것은 벽에 부딪혔을 때, 손에 든 카드를 잘 이용해 어떻게 길을 개척해 가는지에 달려있다고 조언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기린박사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 저자 소개(군지 메구)
기린 박사. 어려서부터 동물 TV 프로그램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시청할 만큼 동물을 좋아했다. 동물에 대한 탐구심이 강해 개구리 알과 도마뱀 알을 부화시켜 다 클 때까지 사육하기도 했으며, 나비·장수풍뎅이·햄스터·문조·개 등을 키웠다. 그중에 가장 좋아했던 동물은 다름 아닌 기린이었다. 도쿄대 1학년 때 자신이 좋아하고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그때 강렬하게 떠오른 것이 기린 연구였다. 운명처럼 기회는 찾아왔고, 동물원에서 다양한 동물 사체를 인수하고 해부하여 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엔도 히데키 교수를 만나게 된다. 그의 격려와 도움으로 처음 메스를 잡고 코끼리, 코뿔소, 코알라 등을 해부했고 마침내 첫 기린 ‘나쓰코’를 해부하게 된다. 그렇게 도쿄대학원 석사.박사과정에서 기린을 연구했으며 27세에 염원하던 기린 박사가 되었다. 해부학과 형태학 전문가로, 포유류와 조류를 대상으로 ‘목’의 구조나 기능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10년간 30여 마리에 기린을 해부했고 골격 표본을 제작해 박물관에 보관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도전과 열정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용기 있게 말하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신의 연구에 함께해 준 기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연구 자료를 남기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지금도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골격 표본을 만들고 연구하고 있다.
1989년에 태어나 2017년 3월 도쿄대학 대학원 농학생명과학 연구과 박사과정(농학박사)을 수료했으며, 2017년 4월부터 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PD로 국립과학박물관에 근무 중이다. 제7회 일본학술진흥회 이큐시상을 수상했다.
♣ 목차
감수자의 말
들어가는 말
기린 목의 골격도
제1장 기린 해부란?
해부는 언제나 갑자기
해부에 필요한 도구
1단계: 사체 반입
2단계: 해부
3단계: 골격 표본 제작
재밌는 읽을거리_ 기린이라는 이름의 유래
제2장 기린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다
기린을 좋아하던 소녀
기린 연구자를 꿈꾸며
해부학 교수님을 만나다
동물 사체와의 첫 만남
드디어 기린 해부의 기회를 잡다
첫 기린 ‘나쓰코’
기린의 ‘해체’하다
‘해부’와 ‘해체’의 차이
재밌는 읽을거리_ 나보다 연상인 동물을 만날 때
제3장 드디어 기린을 ‘해부’하다
나의 첫 해부 기린 ‘니나’
‘해체’에서 ‘해부’로
첫 해부에 도전하다
눈앞에 펼쳐진 기린의 목 근육
무력감만 남긴 첫 해부
두 번째 해부 기회
근육 이름은 그냥 이름일 뿐
노미나를 잊어라
뛰어난 관찰자가 되어라
마침내, 해부를 완료하다
재밌는 읽을거리_ 동물원에서 기린 종을 나누는 법
제4장 본격적인 기린 목뼈 연구
기린의 경추는 몇 개일까?
엇갈린 운명의 논문
기린이라면 설날도 없다
노이로제의 끝에서
기린의 놀라운 목 구조
어둠에 묻힌 ‘기린의 경추 8개설’
제1흉추가 혹시 움직일까?
재밌는 읽을거리_ 운명 같은 인연, 운명 같은 연구
재밌는 읽을거리_ 논문은 타임머신
제5장 제1흉추를 움직이는 근육을 찾아서
목의 기저부를 상하지 않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기린과 오카피가 죽으면 연락주세요
냉동고에 잠든 오카피 표본
목과 몸통이 절단되지 않은 첫 기린
나흘간의 분투
제1흉추를 움직이는 근육을 찾아서
여전히 보이지 않는 근육
재밌는 읽을거리_ 기린의 뿔은 몇 개일까요?
제6장 흉추인데 움직일까?
갈비뼈가 있어도 움직일까?
기증받은 새끼 기린
CT 스캐너로 움직임을 확인하다
실제 움직임을 확인한 순간
재밌는 읽을거리_ 수컷 기린의 머리가 더 무거운 이유
제7장 기린의 8번째 ‘목뼈’의 발견
오카피의 해부에서 힌트를 얻다
제1흉추를 움직이는 구조
손상이 없는 완벽한 사체 ‘키리고로’
자연 속 해부대
해부의 집대성
혼자서 마무리
기린의 특수한 제1흉추의 기능
‘기린의 8번째 목뼈설’의 제창
마침내 논문 발표
재밌는 읽을거리_ 가장 혈압이 높은 동물, 기린
제8장 새로운 연구를 향해
목이란 뭘까?
졸업과 수상
초심을 잊지 말자
멸종 위기의 기린
다음 연구를 준비하며
재밌는 읽을거리_ 엄마에게서 학문의 즐거움을 배우다
나가는 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