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사인 바빈 부인은 공작부인이 무도회에 입을 멋진 드레스를 완성하지만 몸이 아파서 갖다줄 수 없습니다. 엄마 대신 드레스를 전하겠다는 어린 딸 아이린은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고 커다란 옷상자를 양팔에 꼭 안고서 눈 내리는 추운 길을 나섭니다. 날은 어두워져 가고 점점 더 거세지는 눈과 매서운 바람은 작정이라도 한 듯 아이린의 걸음을 막아섭니다.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바람에 맞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린과 바람의 대결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심통 맞은 바람이 급기야 상자를 낚아채 안에 들었던 드레스가 훨훨 날아가 버릴 때는 아이린이 힘든 여정을 이제 그만두고 따뜻하고 안전한 집으로 되돌아가길 바라는 마음마저 듭니다. 과연 아이린은 공작부인에게 드레스를 전할 수 있게 될까요?

비범한 능력을 갖춘 아름다운 공주의 모험이라는 거창한 서사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요즘, 작고 평범한 어린 아이린의 용기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도 하며 다른 이들의 비난과 오해와 실망을 걱정하면서도,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꿋꿋하게 행동하는 용감한 아이린이 우리 주변에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별과 나이와 신분을 넘어서 성품과 용기와 솔직함을 높이 평가하며 열린 마음으로 함께하고 믿어주는 성숙한 어른들도 더불어 많아지기를요.

어린이책시민연대 광진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