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도는
좀처럼 소거되지 않는 언캐니한 목소리들
『호수와 암실』은 과거에 존재했던 공간인 ‘호수’와 ‘암실’로부터 이어지는 두 가지 기억의 궤적을 따라 전개된다. 주인공 ‘나(서연화)’는 사실 어린이모델 시절, 촬영 현장에서 자신을 희롱하던 스태프를 차로 치어 죽인 적이 있다. 여전히 깊은 모멸감으로 남아 있는 그 기억은 시시각각 현재의 시간으로 침범해 들어오려는 두 여성의 존재로 인해 ‘현재’의 공포로 되살아난다.
촬영 현장에서 어린 자신을 학대하듯 방치한 ‘엄마’와 예쁘고, 가난해 보이는 아이들을 표적 삼아 성매매를 알선한 죄로 정화여학교(소년원학교)에 입소하게 된 ‘로사’는 ‘나’에게 최초로 혐오라는 감정을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로사’와 재회하게 된 것은 ‘나’와 동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재이’를 통해서다. ‘재이’는 만 17세의 미성년 시절, 일명 ‘턱수염’이라 불리는 사진작가 앞에서 청바지만 입은 채 상반신은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화보 촬영을 했었다. ‘재이’는 자신에게 모멸감을 준 세미누드 촬영을 자랑스러운 필모그래피라고 내세우는 ‘턱수염’에게 분노하지만 과거를 폭로하고 고발하는 데는 여전히 주저한다. 과거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재이’를 대신해 ‘턱수염’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나’는 인터넷 세계에 공허하게 떠도는 그의 흔적을 추적해나간다. ‘나’는 과연 저주와 빙의로 가득 찬 오컬트 같은 세계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 소개출처: 온라인서점(알라딘)
저자: 박민정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바비의 분위기』, 중편소설 『서독 이모』,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백년해로외전』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