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라는 명칭은 지금의 광장동의 광진교 주변의 강폭이 넓은 곳에 나루터가 있다하여 "너븐나루" 라고도 불리워졌던 "광나루"에서 유래되었다.
옛날에는 우리 광진구는 아차산과 한강을 접한 훌륭한 지리적 특성으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유명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지고한 사랑을 간직한 아차산을 중심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뺏고 뺏기는 각축장이었으며, 광나루와 뚝섬나루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오가던 교통의 요충지로 각 지방의 산물과 문화가 집산되어 번성하던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넓은 구릉과 벌판에 펼쳐져 있는 말 목장이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조화를 이루는 멋진 풍경으로 낙천정과 화양정이 세워져 많은 귀족과 묵객들이 머물며 서정을 읊던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서울의 한강 상류에 접한 청정지역으로 아차산자연공원과 어린이대공원, 세종대학교, 건국대학교, 뚝섬 한강시민공원으로 이어지는 풍부한 녹지대를 형성 하고 있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며, 워커힐, 테크노마트, 리틀엔젤스예술회관 등 문화 관광자원이 풍부한 멋과 흥이 넘치는 지역입니다. 또한 지하철 2호선, 5호선, 7 호선이 관통하고 동서울터미널, 7개의 교량이 연결된 교통의 요충지로 동부 서울의 관문이며, 지하철 역세권을 중심으로 전자, 의류, 가구, 음식 등 특화된 상가지역이 잘 발달되어 있어 생활이 편리한 안정된 주거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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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로 이 곳이 우리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이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475년에 한강 남쪽에 자리한 백제의 수도 인 위례성을 함락시킨 이래 신라 무열왕이 675년에 한반도를 통일할 때까지인 260여년 동안 이 곳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삼국이 국운을 걸고 싸움을 벌이던 무대였다.
고려 태조 때부터 정종때까지는 양주로, 문종 이후 충렬왕 때까지는 남경, 충선왕 이후 고려말까지는 한양부로 불리웠으며 당시 각 지방은 호족세력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양주지방은 뚜렷한 호족세력이 나타나지 않던 곳으로 고려 태조 왕건의 공격에 의해 점령되어 고려왕조의 직할지가 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 광진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하였는데 이 곳은 국가의 군사용 말을 기르고 훈련하는 마장이 넓게 자리잡고 있어 임금이 수시로 나와 군사훈련을 참관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에 속하였으며 해방후 1949년 8월 13일 뚝도출장소를 설치, 서울특별시에 편입하였다.
1968년 1월 11일에 뚝도출장소를 폐지하고 관할구역을 성동구 직할로 편입하였다가 1995년 3월 1일 성동구를 중랑천과 동이로를 경계로하여 성동구와 광진구로 분할,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동 16개(중곡 1,2,3,4동, 능동, 구의 1,2,3동, 광장동, 자양1,2,3동, 노유1,2동, 화양동. 군자동), 면적 17.04㎢, 인구 39만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양군 뚝도면을 편입하여 뚝도출장소 설치
편입지역 지명 里를 洞으로 개칭
뚝도출장소를 폐지하고 관할구역을 성동구 직할로 편입
잠원, 서초, 양재동 면목동 일부가 성동구로 편입
성동구를 성동구와 강남구로 분구
구의동에서 광장동을 분동
중곡1동을 분할. 중곡1,3동으로, 자양동을 자양1,2동으로 분동
중곡2동을 분할. 중곡2,4동으로 송정동을 분할 송정동과 군자동으로 분동
자양1,2동을 분할하여 자양1,2,3동으로 분동
능동 일부와 광장동 일부를 분할하여 구의2동을 설치
성동구를 광진구와 성동구로 분구
광진구 지역은 삼국통일후 신라의 한산주에 편입되었다가 경덕왕 16년(757년)에 한주로 개칭되었고 조선시대 정조 13년(1789년)에는 두모방과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망우면에 속에 있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 도령(道令) 제3호에 의거 경성부와 그 관내의 면의 개칭 및 구역을변경, 5부 8면제를 실시하여 두모방을 두모면으로, 인창방을 인창면으로 변경하였으며, 3년후인 1914년 3월 13일에는 5부 8면제가 폐지되고 다시 도령(道令) 제 3호에 의거 면제가 실시되어 인창방(사근리, 마장리, 상왕십리, 하왕십리)의 4개리와 두모방(두모포, 수철리, 행달리, 응봉리)의 4개리를 합한 한지면과 뚝도면에 속하여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 경기도에서 관할하게 되었다.
경기부 조례 제6호에 의거 동부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43. 4. 1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동대문구와 성동구로 분활되었으며, 1945. 9. 15 경성부를 서울시로 개칭하고 다음해인 1946. 10. 18 군정법령 제106호에 의거(1946. 9. 16 공시)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 서울특별시 성동구가 설치되었고 이 무렵 일본식 동, 리명을 유서깊은 우리의 동명으로 [정(町) - 동(洞)]개칭하였다.
1949. 8. 13 대통령령 제 159호에 의거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광진구 지역은 고양군 뚝도면(동뚝도, 서뚝도, 화양, 모진, 송정, 군자, 중곡, 면목 ,능, 신천, 잠실, 자마장, 구의, 광장리의 14개리)을 편입하여 뚝도출장소에서 관할하게 되었으며, 화양리, 모진리, 능리, 군자리, 중곡리, 구의리 등으로 불리워졌다.
1950. 10. 4 동회사무를 일제 개시하였으며, 1955. 4. 18 서울특별시 조 례 제66호에 의거 동제를 실시하여 종래 임의단체로 시 행정에 협조하여 오던 동회제도를 폐지하고 행정자치법에 의하여 동제르 실시하여, 종래의 동회를 동사무소로 개칭해서 시행정의 말단사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1962. 11. 21 법률 제 1772호(1963. 1.1 시행)에 의거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중대면, 대왕면 일대를 편입하여 천호. 송파출장소를 설치하고 언주면 일대를 편입하여 언주 출장소를 두어 관할하게 하였고, 1964. 1.1 뚝도출장소를 폐지하고 성동구 직할로 편입되었으며, 1973. 6. 26 서울특별시 조례 제 780호(1973. 7. 1 시행)에 의거 송파.언주출장소를 폐지하고 영동출장소 신설됨에 따라 종전까지 성동구 관할하에 있던 영동 출장소.천호출장소 관할의 전역이 성동구에서 분리되어 강남구가 되었으 며, 동구 황학동, 흥인동, 무학동과 신당동, 상왕십리동의 일부를 중구에 편입하였고, 중곡동, 능동, 군자동 중 각 일부를 중랑구에 편입시키는 한편 동대문구 면목동, 용답동, 답십리동의 각 일부를 동대문구에 편입시켰다.
또 1977. 8. 27 대통령령 제8666호(1977. 9.1 시행)에 의거 강남구 신천동 일부를 성동구 구의동으로 편입하여 다음해인 1973. 3. 25 서울특별시 고시 제58호에 의거 중구 무학동 43번지에서 성동구 자양동 220-147 번지로 청사를 이전하여 집무를 개시하였다.
1977. 9. 1 조례 제1181호(1977. 8. 29 공포)에 의거 마장동을 폐지하고 성수2가3동.광장동 신설 및 조례 제1185호(1977. 8. 29 공포)에 의거 능 동일부 및 강남구 신천동 일부를 구의동에 편입하였으며, 1978. 10. 10 조 례 제1278호(1978. 10. 10 공포)에 의거 중곡1동에서 중곡1동 및 중곡3동, 자양동에서 자양1.2동으로 분동 신설하였고, 1980. 7. 1 조례 제1413호(1980. 3. 31 공포)에 의거 군자동. 중곡4동을 신설하였다.
그리고 1995. 3. 1 법률 제4802호(1995. 3. 9 공포)에 의거 중곡동, 모진 동과 능동일원, 구의동, 광장동, 자양동, 화양동, 송정동, 군자동, 성수동2 가 일부를 편입하여 성동구에서 분구 광진구를 신설하였고, 구조례 제1호 (1995. 3. 9 공포)에 의거 노유동을 신설, 성수2가2동을 폐지하고 노유1동 으로, 성수2가4동을 폐지하고 노유2동으로 변경하였으며, 구조례 제2호(1995. 3. 9 공포) 관할구역을 제정하여 중곡1.2.3.4동, 능동, 구의1.2.3동, 광장동, 자양1,2,3동, 노유1.2동, 화양동, 군자동 등 법정동 9개 및 행정동 16개 동으로 조정하였다.
또 1996. 12. 6 조례 제140호에 의거 능동 일부를 중곡동과 구의동에, 광장동 일부를 구의동에, 군자동 일부를 능동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