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곽기용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럼 평소에 책 많이 읽으시겠네요?’ 정답은 아니오! 사소한 변명을 하자면 자세히 읽으며 세부적인 내용을 살피기보다 흐름만을 보고 넘기는 경우가 일상이 되었다. 바빠서랄까..? 간만의 휴일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의식적으로 책 이야기는 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너 그거 읽어봤어? 하고 나오는 ‘책’ 관련 질문이라니! 본능적인 거부감은 어디로 가고 간만에 ‘썰’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난 필자는 친구와 「모비 딕」 에 대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막바지의 한 마디 두꺼워서 읽기가 어렵더라고.. 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던지는 친구, 두꺼워 봐야 200페이지 내외인 책인데 무슨 소리란 말인가? 싶었는데 800페이지가 넘는 ‘원전’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순간 턱 말문이 막혀 왔다. 그럼 내가 읽은 책은 뭐란 말인가?
고전이란 내용의 어려움보다 그 두께로 많은 이들을 좌절시킨 벽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잠시 후였다. 소위 읽어는 봤으되 원작과는 차이가 큰 파편화된 지식을 가진 필자, 문득 드는 생각은 필자가 진짜 책을 깊이 읽은 게 몇 권이나 되나 하는 씁쓰레한 감정이었다. 생각난 김에 고전부터 다시 살펴보기 위해 신은하 저자의 <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를 펼쳐 보았다.
책은 30종류의 고전에 대해 저자의 경험을 섞어 대략적이면서도 폭넓게 소개해 준다. 고전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친절히 알려주지만 이는 매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잠시 쉬어갈 곳을 찾는 법,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가는 법,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법 등을 알려주는 저자의 인생 조언서.. 랄까?
고전이 그 조언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대목이 바로 케렌시아(피난처, 안식처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저자의 케렌시아는 바로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뿌듯하면서도 독자들은 도서관에서 무엇을 얻어 가는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나의 케렌시아는 어디일까. 곰곰이 돌아보면, 나에게도 인생의 고비마다 '동굴'로 기어들어 가듯 찾아가던 곳이 있었다. 바로 동네 시립도서관의 '종합열람실'이다. (p.18)
저자는 삶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도서관을 찾아 숨을 고르며 여유롭게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실패를 복기하고 다음 걸음을 계획하는 장소에서 고전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고민들에 대해 답을 찾아나간 것이다. 필자 또한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질 때 책을 통해 탈출구를 찾아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저자가 ‘극복’의 수단으로 고전을 활용했다면 필자는 ‘치유’의 수단으로 정확히는 다른 데 관심을 돌릴 수단으로 읽기만 했달까?
그러나 어떤 수단이든 독자에 따라서 뭔가 얻어 갈 수 있는 게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펼쳐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인간사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부분이 있고 그런 문제를 관통하는 해답을 제시하기에 고전이 오랜 시간 동안 고전이라 불리는 것이니까! 엄선한 30권의 고전이라면 독자들의 문제 해결을 도와줄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고전을 삶의 버팀목으로 쓰고자 하는 독자라면 저자가 추천하는 고전, 그리고 그에 더해진 문제와 인생 경험이 본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므로..!
만약 다른 사람과 만나고, 의견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에 소극적인 필자 같은 사람이 읽는다면? 오랜 시간 고전에 축적된 지혜 한 토막을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왕자」 속 여우가 말한 ‘길들임’처럼 말이다.
관계는 많아졌는데 친밀함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더 외로워졌다고 느낀다. 여우가 말한 '길들임'은 그런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진짜 관계란 시간을 들여 서로를 알아가고, 기꺼이 책임지며, 마음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축적하는 일이어야 한다. (p.134)
인간관계에 고민이 많다면 마음에 와닿는 따뜻한 조언이다, 그뿐인가? 귀차니스트라면 위처럼 저자만의 해석이 담겨 있는 부분이 일단 솔깃하다. 위 문구는 저자의 상황에 빗댄 해석이기는 하나 조금 다른 해석으로 고전을 들여다본 측면도 있다. 필자도 독서회 등을 진행하며 <어린 왕자>를 여러 번 읽었지만 책 속 숨겨진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는가는 여전히 미지수기에 이런 해석들이 신선하게 와닿았다. 일단 ‘아는 채’ 하면서 겉핥기를 하고 함께 읽으며 내실을 채워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두꺼운 고전에 지레 겁먹었거나 약간의 정보만 가지고 고전을 읽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고전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면 일단 이 책을 펼쳐 보자, 저자의 해석에 내 해석을 가미해 일단 ‘아는 채’ 해 보자 그리고 의견을 나누다 보면 이 고전은 이런 의미인 것 같은데 하는 때가 온다. 그렇게 독자 각각의 해석이 쌓여 갈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신은하)
책 모임을 사랑하는 독서 활동가입니다. 좋은 책일수록, 두꺼운 고전일수록 혼자 읽는 것보다 함께 읽을 때 더 깊이, 더 끝까지 읽을 수 있다고 믿는 ‘함께 읽기’ 마니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책 모임을 통해서는 충분히 변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 효과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문학 석사)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사회복지학 석사)를 졸업하고, 27년간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자와 기획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계기로 ‘엄마의 자아 찾기’를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인문학 학습 모임에 꾸준히 참여해 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숭례문학당, 시립도서관, 고등학교 등에서 독서와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어린이부터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는 책 모임을 통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성장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목차
Prologue : 고전 읽기 좋은 나이, 고전이 필요한 인생
Part 1. 나는 왜 고전이 좋았을까
나의 케렌시아에서 고전에 기댄 시간
고전이 정말 인생을 바꿔줄까요?
다음 버스를 기다리게 하는 힘
웅덩이에 물을 채우듯이, 우물을 깊이 파듯이
마흔,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나이
Part 2.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존재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도록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사춘기 가정마다 꼭 있는 홀든 콜필드 -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부끄럼 많은 생애를 위한 위로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문제는 언제나 ‘마음’이야, 바로 내 마음 - 나쓰메 소세키 《마음》
편견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보이는 것들 -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오르막만 있는 인생은 없다 -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Part 3.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를 견디어낸다
부모 노릇, 그 고단함에 대하여 - 오노레 드 발자크 《고리오 영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격의 어머니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진짜 사랑을 구별하는 법 - 서머싯 몸 《인생의 베일》
성장하는 삶, 소멸하는 삶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사랑이 필요한 세상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서로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Part 4. 슬픔을 안고도 아름다움을 바라보라
앞만 보고 달려온 직장인의 슬픈 자화상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세일즈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끊임없이 모래를 퍼내는 인생 -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화려하지 않은, 그러나 단단한 삶 - 존 윌리엄스 《스토너》
천복을 따르는 자의 기쁨과 슬픔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Part 5. 완벽하지 않아도, 길은 계속된다
무 자르듯 둘로 가르는 이분법 사회 -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부조리한 세계를 정직하게 사는 법 - 알베르 카뮈 《이방인》
가짜 뉴스가 만든 진짜 비극 -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우리가 꿈꾸는 리더, 우리가 꿈꾸는 세상 -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집념과 집착, 그 아슬아슬한 경계 - 허먼 멜빌 《모비 딕》
고작 외투 하나를 잃었을 뿐인데 - 니콜라이 고골 《외투》
Part 6. 흔들림 속에서도 ‘나’로 살아가기
뜬금없이 내면의 북소리가 들려온다면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나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 헨리 데이빗 소로 《월든》
끝내 패배하지 않는 삶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차마 말할 수 없어 글이 되었고, 견딜 수 없어 문학이 되었다 - 박경리 《토지》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게 하는 글쓰기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