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한민
‘사서’가 돼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수많은 책을 만나게 된다. 그 많은 책 중에는 너무 재미있어 여러 번 읽었던 책도 있고 취향에 맞지 않아 끝까지 읽지 않은 책도 있다. 제목이나 표지가 눈에 띄거나 어딘가 특이한 책을 만나면 ‘어디 한번 볼까?’라는 마음으로 손을 뻗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라는 특성상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을 보고 ‘이상한 책’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이라는 제목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얼마나 이상한 책들이 있을까?’라는 질문과 ‘내가 일하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절대로 만나볼 수 없는 이상한 책들이 담겨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만나게 된 책들은 단언컨대 내 기대를 뛰어넘을 만큼 이상했다.
구글북스가 2002년부터 현존하는 모든 종이책을 입수해 전자책 사본으로 만드는,
코드명 ‘프로젝트 오션’을 8년째 추진하고 있던 것이다. 사업을 완수하려면 팀에서 감당할
책의 권수부터 대출이라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팀원들의 생각이었다. ···
이 과정에서 중복된 판본, 마이크로피시, 지도, 영상물, 오래전 어느 만우절에 누군가 장난으로
도서관 장서 목록에 등록하는 바람에 책의 탈을 쓰고 있던 육류용 온도계를 탈락시켰다.
그런 후에야 전자책이 될 수 있는 책의 총계에 가까운 수치를 얻을 수 있었으니,
모두 1억 2986만 4880권이었다. - 10p
물론 ‘이상하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약 1억 3천만 권 중에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만한 ‘이상한 책’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희귀 서적상의 아들로 태어나 책을 수집하기 위해 십 년 이상 전 세계의 도서관과 경매장, 고서 판매점을 돌아다닌 작가의 경험 속에 엄선된 ‘이상한 책’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이건 별로 이상하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든 책은 거의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책 속에서 만나게 될 책들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을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이상한 책’들은 일반적인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하듯 나누기 어렵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책들을 나누고 이를 목차로 삼았다. ‘책이 아닌 책’, ‘살과 피로 쓴 책’, ‘암호로 쓴 책’과같이 말이다.(목차 전체는 이 페이지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차의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살면서 한 번도 마주쳐보지 못하고 상상도 해보지 못한 책들이 가득해서 하나하나 소개하고 싶지만, 이 책은 목차에 따라 단순히 책들의 제목이 나열된 백과사전이 아니다. 이상한 책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왜 만들어졌는지, 이 책이 가진 이야기와 작가가 가진 이야기는 무엇인지 깊고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쉽지만 이 책을 보는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이상한 책 중 내가 유일하게 본 책 로버트 훅의 『현미경 검사술』(흔히 마이크로그라피아라고 부른다.) 에 대한 설명만 짧게 소개해 보겠다.
로버트 훅의 『현미경 검사술: 또는 돋보기로 관찰한 미세한 신체에 관한 몇 가지 생리학적 기술』을
짧게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가능할까? 이 책은 몇 페이지의 설명과 정교하게
새긴 삽화 서른여 편만으로 온갖 비밀을 쏟아내면서 아주 간단하게 세계의 문을 열어젖혔다.
훅은 현미경 접안렌즈를 통해 본 곤충과 식물, 그 밖에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대상들을 삽화로
그려낸 최초의 위인이었다. ···
기쁨에 취해 식물이든 곤충이든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것은 모조리 가져다
현미경 렌즈 아래에서 전혀 다른 세계로 바꾸는 사람을 한번 상상해보자. - 224p
Mad man’s library라는 원제에서 보이듯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은 형태, 내용, 역사, 작가 등을 이유로 사회 주류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 책들은 ‘별종’이고 그만큼 그 당시 사회와 시대의 다양한 측면과 작가의 감정이 깊게 남겨져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보통의 책들과 달리 작가가 왜,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됐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면서 숨결 한번, 손짓 한 번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수많은 책을 남아있다는 것에 복잡한 감정이 들것이다. 그리고 과연 좋은 책, 진짜 책은 무엇인지 그 이전에 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평소에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 궁금한 사람, 그냥 단순히 신기한 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지만, 평소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들에게 특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저자 소개 (저자: 에드워드 브룩-히칭 )
Edward Brooke-Hitching
영국의 작가 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희귀 서적상 프랭클린 브룩-히칭의 아들이자, 서지학과 책 보존의 역사를 다룬 책 『책의 적들TheEnemies of Books』을 쓴 인쇄업자 겸 서지학자 윌리엄 블레이드의 후손이다. 방대한 자료를 모아 기상천외한 큐레이션을 선보이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저서로는 역사에서 잊힌 스포츠 종목을 소개하는 『여우 던지기, 문어 레슬링 그리고 잊힌 스포츠들Fox Tossing, Octopus Wrestling and Other Forgotten Sports』, 인간의 상상 속에만 있던 허구의 나라를 비롯해 지금껏 존재해온 지도상의 오류들을 소개하는 『유령 아틀라스The Phantom Atlas』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책이 아닌 책
살과 피로 만든 책
암호로 쓴 책
출판 사기
괴상한 사전들
초현실세계를 다룬 책
종교계 괴서들
이상한 과학책
기상천외한 크기의 책
제목이 이상한 책
감사의 말
참고 문헌
도판 출처
이 책에 나오는 책들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