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한민
책을 고르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나는 보통 나의 경험과 연관된 책을 고르는 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프라이팬의 손잡이가 빠져서 새로운 프라이팬을 사러 갔다. 가게에서 프라이팬을 고르는데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조리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봉투에 프라이팬과 함께 샐러드 볼, 조리용 집게, 파스타 보관 용기까지 들어있었다. 얇은 봉투에 무거운 주방용기를 너무 많이 담은 탓인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봉투가 찢어져서 결국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낑낑대면서 집에 돌아와야 했다. 길에서 주섬주섬 떨어진 물건을 줍고 있을 때 후회가 밀려왔다. ‘분명 사야 할 물건은 프라이팬 하나였는데 왜 다른 것들까지 샀을까? 평소는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그랬지?’ 그리고 다음날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물건을 사고, 구입한 상품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가?
이것이 대체 다 뭐란 말인가? 왜 우리는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는가?
그것이 말을 걸기라도 하는 걸까? – 12p
저자는 환경운동가로서 그린피스 소비자 대변인으로 일할 때 소비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 쇼핑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많은 물건을 샀던 자기 삶에서 멀어지면서 소비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자가 행동생물학자에게 들은 쇼핑은 ‘진화생물학적으로 결정적인 요소’다. 쇼핑은 기본적으로 소비를 뜻하고 더 많은 소비는 개체의 건강과 안정적인 종족 번식, 성 선택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쇼핑은 우리에게 도파민을 준다. 하지만 쇼핑은 식욕 같은 것과는 다르게 충족될 수 없다. 물건을 탐색하고 원하는 물건을 찾았을 때 얻는 쾌감은 짧은 시간만 지속되고 다시 새로운 탐색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물건을 찾을 때마다 끝없이 발생하는 이 쾌감 때문에 우리는 쇼핑에 중독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류학자가 말하는 쇼핑은 ‘인간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다. 필수적인 소비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유행에 맞춰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점에 맞춘 기업들의 광고와 ’다른 사람이 구매한 물품!‘, ’이번 주 한정 판매!‘ 같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속아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충동적인 소비를 반복하게 된다.
물론 소비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소비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음식을 먹고, 옷을 입어야만 한다. 그래서 소비를 하더라도 ’좋은 소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소비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과도한 마케팅에 속지 않으며 꼭 필요한 물품만 구매하는 것,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물품을 찾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물품을 구매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제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일일이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사회적 영향까지 고려하는 것은 시간을 많이 소요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좋은 소비를 시작조차 하지 않거나 길게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심리학자 ’칼라 보르스웍‘을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당장 100퍼센트 올바르게 행동할 필요는 없다‘, ’세세한 부분에 집중할 필요 없이 조금씩 노력하면 된다‘라고.
나는 젊은 심리학자 칼라 보르스윅(Carla Borthwick)에게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
딱 들어맞는 말을 발견했다. “나는 고기를 먹지만 물고기를 보호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싶다. 노숙자 문제를 알지 못하지만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감사한다.
패스트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 기후활동가들에게도 감사한다. ···
우리는 모두 다양한 길 위에 있고 다양한 눈으로 이 세상을 본다.
당신과 관련된, 그리고 당신이 전력투구하는 당면문제는 남들도 바꾸고 싶어
하는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의 모든 부분을 구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보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책임이다. – 294p
이 책의 작가가 환경 전문가인 만큼 순수하게 우리가 물건을 구매할 때 발생하는 생체적인 일련의 소비 메커니즘보다 소비를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여 소비가 주는 개인적, 사회적 영향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 개인의 소비 습관을 돌이켜 보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의 소비 습관을 점검해 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좋은 소비‘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 소개 (저자: 누누 칼러)
19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 대학에서 신문방송학, 영문학, 현대사를 공부했다. 오스트리아 일간지 《디프레세Die Presse》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14년에서 2019년 까지 그린피스 소비자 대변인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에이전시 ‘싱크 칼러풀Think kallerful’을 설립, 지금은 작가, 강연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한때 쇼핑 중독이었던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이자 환경운동가로서의 복잡한 고민을 이 책에서 이야기한다. 시장의 상술을 폭로하면서도 할인 제품을 사러 다닐 때는 마구 쏟아지는 도파민의 파도를 타기도 하고, 산업과 시장이 어떻게 우리의 구매욕을 자극하는지 쇼핑의 심리학을 설명하면서, 고객들이 소비에 대한 책임을 떠안지 않도록 대변한다. 이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설계자가 될 수 있을지 탐구해 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펼쳐 보인다.
목차
머리말
도파민의 파도가 몰려온다
도파민의 파도가 온다 | 취미로서의 쇼핑 | 문제는 섹스다 | 소비하는 존재, 인간 | 자유 의지에 관하여 | 행복과 소비를 한몸처럼 |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 저건 지금 사야 해!
나는 구매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멋진 삶을 구매한다는 착각 | 소비는 외롭다
물건을 살 때 일어나는 일
슈퍼마켓 실험 | 너무 많은 잼 | 인스타그램과 마사지기 | 모든 것은 선택이다
내가 사는 것이 곧 나다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기 | 브랜드, 브랜드, 브랜드 | 화장품이라는 값비싼 자존감 | ‘누구에게나 다 맞는 옷’의 진실 | 페미니즘과 소비 | 패스트 패션의 사악함 | 넌 하울 하니? 난 통곡한다
나쁜 소비
알고 싶지 않은 사실 | 소비자의 결정, 소비자의 죄책감 | 우리 지갑에는 힘이 있다 | 팜유가 문제일까 | 친환경 기업의 본모습 | 죄책감 비용 | 곤도 마리에의 성공 | 블랙 프라이데이와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날 | 우리가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면
이로운 삶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 교환하기, 나누기, 빌리기 | 온라인 쇼핑의 방해 | 모든 것을 멈춰야 할까 | 소비의 부끄러움 | 모두가 세상을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연결된 문제들 | 소비자이자 시민, 그리고 인간 | 코로나 19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