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고대민
몇몇 사람들은 ‘법’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곤 한다. 중세 시대 글자가 귀족들이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나 전유물로 여겼던 것처럼 기득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며, 무전유죄 유전무죄라 얘기하며 불신을 갖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렵고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내용들이 간결하고 단호하게 서술된 판결문이나 법전은 낯설고 친근하지 않은 것은 분명할 것이다.
현직 판사인 저자는 지난 10년간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판결문을 인용하여 이러한 불신과 어색함을 해소하고 현업 종사자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그 예로 법과 판결의 해석이 현실에 뒤처져 있다는 지적에 대해 법적 안정성에 관해 설명하며 그 까닭을 설명한다.
“야구 경기를 할 때 스트라이크 존이 너무 좁거나 넓다는 비판이 있더라도 어제의 스트라이크 존과 오늘의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p.52
법적 안정성이란 법과 해석과 적용에 대해서 일관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법을 인정하고 지키고 따르며 사회질서도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 가치이자 무거운 가치로 판사와 법원에서는 기존 질서의 안정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보수적인 관점의 접근 방향성을 취할 수밖에 없다. 어느 부분에서는 답답해 보일 수도 있고, 왜 기존 그릇된 판례를 따라가느냐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한계는 곧 시대의 한계이기도 하며, 양심적 병역거부와 양성평등 개념 등을 도입한 대법원의 판례들을 통해 느리지만 침착하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마냥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기보다 다양한 사회 문제와 현실 속에서 최선의 정답을 찾기 위한 그들의 노고에 대한 저자의 해명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판사는 자신이 신중하게 세운 논리와 체계가 정당하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을 때까지 사건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판사가 세운 논리와 체계는 그가 보기에 관철되어야 ‘옳은 것’이다.“ -p.219~220
최근 AI 판사 도입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AI의 결정은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여 내리는 결론이자, ‘집단지성’과 무수한 시뮬레이션의 결과로 개인적인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결정으로 신빙성이 있으며, 기존의 판사들을 대체할 수 있게 느껴진다. 가끔은 AI의 결정이 낫지 않을까 생각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판사들에게는 그들의 용기와 자존심이 담겨 있다. AI는 가지지 않는 책임감과 무게감은 어찌 보면 가혹하기도 하다. 물론 자신의 결정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며,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다양한 판결 속 이야기를 통해 판결이 불합리할 수도, 차가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이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며, 수많은 생각과 고민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임을 해당 도서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 느끼게 한다. 이전 인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된 많은 분야 중 우선순위에 올랐던 것은 분명 판사의 업무였을 것이다. 하지만 판결이란 갈등 해소하고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며, 설득은 그 핵심이다. 아직은 그들의 용기와 자존심을 AI가 대체하기에는 이르지 않나 싶다. 법과 판결에 대해 거리감을 줄이고, 판결 속 ‘사람’으로서의 판사들의 결정에 대해 더 이해하고, 판결의 내면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도서를 권한다.
♣ 저자 소개 (저자: 손호영)
대법원 재판연구관. 판사. 법학박사. 어렸을 때부터 기분 전환하러 서점을 가곤 했다. 겹겹이 쌓인 책을 보면 그 물성(物性)에 아늑했고, 마음 가는 대로 책을 집어 들어 읽을 때는 새로운 세상에 설렜다. 독자로서 책을 바라보다, 어느새 선망하는 글을 좇아 글쓰기를 시작했다. 2014년부터 판사로 일했고 10년을 채운 지금, ‘판사란 누구이고, 판결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업으로서의 판사’, ‘콘텐츠로서의 판결’에 대해 나름 궁리한 이야기를 글로 써 세상과 나눌 용기를 내보았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사법연수원·예금보험공사·한국생산성본부 등에서 법률 강의를 했다. 지은 책으로는 『손호영의 로하우』(세종도서 우수교양도서), 『대신 정리해주는 5개년 형사판례공보 요약정리』, 『문체탐구』(법원사람들 문예상 대상) 등이 있고, 예비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한 칼럼 〈손호영 판사의 판례공부〉를 연재하고 있다.
♣ 목차
추천의 글 _005
프롤로그 _008
제1부 시시포스의 돌 _진실을 위하여
한계 법이라는 말뚝 _018
사람 무엇보다 사람 _024
파급력 판결이란 파고 _031
법+α 법학 너머 _038
법리 I 잘못과 위법의 괴리 _045
질서 안정이라는 그림자 _052
진실 어렵고도 마땅한 다짐 _059
조율 최선을 향한 뜨거운 과정 _067
제2부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_설득을 위하여
싸움 오늘을 위한 새로고침 _074
선례 어제의 필요와 존중 _082
언어 밀고 두드리는 법 _089
숫자 객관과 오해 사이 _096
전문가 인용의 조건 _105
평균 판단의 기준 _113
진술 영원한 숙제 _120
수읽기 실체적 진실을 위하여 _128
법리 II 정의로운 길 _134
마음 법, 존재의 이유 _144
제3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_이해를 위하여
감정 함께 겪음, 같은 마음 _154
모름 증명책임 _163
재치 인간다움의 발로 _171
실수 뒷수습 대신 앞수습 _181
비유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_189
문체 문제는 나 _196
친절 당연한 권리 _206
자존심 책임감의 다른 말 _215
버릇 직업적 습관 _221
용기 법의, 법에 의한, 법을 위한 _226
에필로그 _232
감사의 글 _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