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최혜미
언제부터였을까?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손에도, 길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손에도, 식탁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눈앞에도.
크기도 모양도 다르지만, 직사각형의 화면이.
무섭게 빛나며, 오색찬란한 색으로, 손안에서 반짝이며.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어쩐지 빛없이, 반짝임도 없이. 오직 정지한 채로만, 깜빡이지도 않는 눈이.
최근 들어 의식적으로 주변을 본다.
핸드폰을 보고 걷는 사람들이 몇인지,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고 밥을 먹는 이들이 몇인지.
무엇을 그렇게 보는 걸까? 하는 궁금증보다 괜찮은 걸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든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책 「손 안에 갇힌 사람들」은 이러한 내 물음에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답한다.
코로나 발생 이후, 이러한 통계와 사회적 불안정성은 훨씬 더 나빠지기만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21세기라는 기술 중심 시대를 살아가게끔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는 의미를 잃고 앉아서 화면만 들여다보는, 원자화된 존재로 살 운명이 아니다.
문제는 현대의 생활이 수렵·채집인의 심리적 욕구에 상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몸을 움직이고 의미를 추구하며 공동체로 단단히 연결되어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게끔 설계되었다.
아아, 그렇지. ‘우리는 화면만 들여다보는, 원자화된 존재로 살 운명이 아니’며, ‘본래 몸을 움직이고 의미를 추구하며 공동체로 연결되어 살아가게끔 설계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자명한 사실이다. 길을 걸을 때는 주변 사물과 풍경을 둘러보며, 주위를 조심하며 길을 건너고, 밥을 먹을 때는 마주하고 있는 이의 얼굴 혹은 때때로의 기억을 꺼내보며 혼자 먹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는 시집과 같은 얇은 서적을 펼쳐보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인류는.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말이다.
문제는 ‘소니와 수지가 화면을 너무 많이 들여본다’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중요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기술 중독에 따른 정신적·의학적 변화가 있었고, 사회정치적·경제적 의미가 생성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종이 점점 더 약해지고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51p.
기술 집착에 눈이 멀어 우리는 기술에 의존하는 지금의 무력한 상태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63p.
우리는 그저 앉아서 화면만 바라보는 목적 없는 존재로 살게 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가
현대의 식습관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구석기식 식단을 고수하는 사람들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가 현대의 디지털 생활방식 역시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72p.
왜 이렇게 암담한 소리만 하는 걸까? 싶겠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우울증 발생률 1위, 행복지수 최하위를 기록하는 나라, 날마다 갱신하듯 보도되는 폭력과 혐오에서 비롯된 상상할 수 없는 범죄 행각들과 만연한 극단주의와 확증 편향(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까지. 외면할 수 없는 현실들이 넘쳐나고 있다.
비단 이런 현상은 한국뿐만은 아닌가 보다. 미국 최고의 중독 치료 전문가 카다라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이 모든 현상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 회사’가 그들의 ‘수익을 위해 극단적인 감정, 의존성, 우울감을 유발하여 사용자를 정적인 고립으로 이끌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소셜 딜레마」에서 인터뷰한 전 구글의 디자인 윤리학자 트리스탄 해리스, 페이스북의 전 직원이자 내부 고발자 프랜시스 하운건의 증언이 이를 입증한다.
책은 1~2부 전체를 소설 미디어 플랫폼이 어떻게 강력한 사회적 전염 효과를 내었고, 이에 따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대인들의 실질적인 사례를 설명한다. 마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급증한 것처럼 느껴졌던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과 고립 등도 근원적인 원인을 따져가다 보면, 소셜 미디어 빅테크가 지니는 구조적 문제와 모순을 알게 된다. 우리가 스스로 중독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중독은 설계된 환경 속에 빠져버린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화면 중독’의 시대를 어떻게 현명하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회복하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큰 불행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실제로 회복력이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다만 일부 사람들은 ‘되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 -294p.
책을 읽으며 가장 기대가 컸던 대목이다. 3부의 <처방: 고대 철학자의 방식으로>에서 박사는 ‘빅테크의 유해성과 기술의 중독적 영향을 이해하고 내면의 회복력, 비판적 사고 능력, 진정한 삶의 목적을 발견할 때 우리는 화면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의 진정한 나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3부를 읽고 나면, 앞서 처참한 현실을 고발한 1~2부와 비교해 이상론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화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화면에 중독되기 이전 우리 삶의 방식을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인지한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는 것. 적당한 운동과 산책, 주변을 살펴보는 시야의 확장, 독서를 통한 비판적 사고 능력의 향상 그리하여 화면 속이 아닌 화면을 쥐고 있는 손, 나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말이다.
우리는, 사람은, 인류는 삶을 윤택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킨 존재이지, 기술의 발전으로 삶을 위협받게 될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이 화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질문해야 하는 존재다. 보는 거을 넘어,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발견하는 것. 우리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최근 <도둑맞은 집중력>, <도파민네이션>이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다. 우리 모두 은연중에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책 「손 안에 갇힌 사람들」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 손에 쥔 핸드폰을 잠시 넣고,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이다.
♣ 저자 소개 (저자: 니컬러스 카다라스)
미국 최고의 중독 전문가, 임상 심리학자. 하와이 마우이 리커버리(Maui Recovery), 텍사스 오메가 리커버리(Omega Recovery)의 CEO이자 최고 임상 책임자. 전 뉴욕 스토니브룩 의과대학의 임상 교수로 신경심리학을 가르쳤다. 타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사이콜로지 투데이, 뉴욕포스트, 살롱, 폭스뉴스 등의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미국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 「20/20」, CBS의 「이브닝 뉴스」, 미국 공영 라디오 NPR 등에 출연했다.
카다라스는 청년기에 뉴욕에서 여러 유명 나이트클럽을 운영했으나 중독 문제를 겪고 죽음 직전 혼수상태에서 살아나는 등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화려하지만 자기 파괴적인 시기를 지나, 고대 철학에서 삶을 바꾼 강력한 가르침을 발견한 그는 중독 문제나 심리적 위기에 처한 환자들에게 고대의 지혜 전통을 해법으로 전한다.
♣ 목차
들어가며
1부 - 진단명: 집단 디지털 광기
1장 매트릭스에 중독된 세상
가상 현실에 갇힌 소 | 의식하지 못하는 개구리처럼 | 신테크노크라트 | 소셜 미디어의 마음 성형 | 도파민 새장에 갇히다 | 디지털 아편 | 메타버스, 혹은 환각
2장 몰입할수록, 단절된다
디지털 시대의 환자에 대한 상념 | 손가락만 움직이는 사람들 | 치솟는 도파민과 우울한 일상 | 우울증의 뿌리 | 일곱 가지 유형의 단절 | 원시인은 왜 우울해하지 않을까
3장 소셜 미디어 팬데믹
재능 없는 인플루언서와 우울한 팔로워들 | 인스타그램 속 자살, 거식증, 그리고 내부 고발자 | 틱톡 투레트 증후군 | 1518년의 춤추는 전염병
4장 번져 가는 폭력
21세기의 베르테르 효과 | 사랑스럽지만 연애에 서툴렀던 영혼들 | 인셀 전염과 학교 총격 사건 | 나쁜 사마리아인 아이폰 | 자극하면, 몰두한다 | 유튜브, 극단주의, 팜 비치에서의 살인
5장 디지털 꾀병
과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느낌 | 이분법의 함정 | 경계선 성격 장애 | 경계선 사회 | 성격 장애 전문 치료사 세라 화이트와의 인터뷰 | 사회 발생적 정체성 혼란 | ‘틱톡적’ 다중 인격
2부 - 멋진, 신세계
6장 전지전능한 기술의 시대
디지투스 이야기 | 괴짜들의 복수 | 페이스북의 아우구스투스 | 실리콘밸리의 아메리칸 드림 | 돌아온 1984 | 페이스북과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 알고리즘 만세
7장 독점 디스토피아
기술 거물들의 청문회 | 통신 품위법 230조 | 기술식민주의 | 금지된 도시, 폭스콘 | 피의 배터리 | 콘텐츠 관리자의 공포
8장 신이 되려는 자들이 꾸는 꿈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AI | 과학과 오만은 결코 잘 어우러진 적이 없다 | 위험성 대 위험 | 메타와 메타버스
3부 - 처방: 고대 철학자의 방식으로
9장 중독자의 고백
밝은 빛, 대도시, 가까웠던 죽음 | 마약 중독자의 새로운 시작 | 다시 일터로 | 피타고라스의 생활 양식
10장 회복력 빈곤 시대의 진정한 치료
회복하는 힘은 자기 안에 있다 | 스트레스에 대한 새로운 생각 | 역경이 만드는 심리적 면역력 | 높은 ‘그릿’과 성공의 상관관계 | 의미 없는 세계에서 의미 찾기 | 어떤 미친 폴란드 신부
11장 철학자 전사
고대인의 도 | 그리스인 조르바의 난제 | 다시 찾은 조르바, 사촌 마키의 블루존 | 플라톤과 피타고라스가 전하는 건강의 지혜 | 저항은 헛된 것이 아니다
감사의 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