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정찬종
레퀴엠(명사):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 음악(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은 오랜 시간 동안 모든 종류의 글을 써왔지만, 이제는 쓰이지 않는 자신의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이자 글쓰기라는 행위 그 자체를 보여주는 책이다.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예술가이자 영화인 요나스 메카스는 탁자 밑에서 수동 타자기 롤을 발견하고 롤을 자신의 오래된 타자기에 끼워 ‘타닥 타닥’ 소설을 집필한다. 그 소설이 담겼다면, 여느 미국 문학도서와 같이 소설로 분류되어 도서관 소설 서가(800번)에 있었겠지만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은 영화계 거장인 저자가 한 권의 소설을 집필하며 떠오르는 상념과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으로 책의 등엔 예술 분야(600번) 띠지가 부착되어 있다.
글쓰기는 다른 무엇과도 별 관계가 없다. 종이와 타자기가 전부다. 그래요, 데리다 선생님. 여기, 아마도 제가 궁극의 해체주의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도요. 실로 의미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단어들, 단지 단어들. 혹은, 좀 더 정확하게는, 문자들. 당신은 그냥 앉아서 타자기를 두드린다. 그게 전부다. 문자에 이어지는 문자, 단어에 이어지는 단어(본문 35p).
보통 책은 소설가가 세상에 내어놓는 한 편의 결과물로 독자는 결과물만을 받아 보는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타자기를 두드리는지, 어떤 방식으로 상념에 잠기는지 그 과정이 신선하다. 더불어 예술가는 예술가로 태어나고, 소설가는 소설가로 태어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누구나 몰입의 순간이 있는 반면 집중이 흐트러지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써 내려야 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그냥 써 내리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럼 앉아서 써!” 그게 끝이었다.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는데_그는 그렇게 말하고 걸어 나갔다. 그에게 축복이 있기를. 나는 그보다 더 현명한 말을 알지 못한다. 그냥 쓰는 것의 황홀함! 순수한 글쓰기, 순수한 노래 부르기, 둘 다 똑같다. 당신은 그냥 노래한다. 혹은 그냥 쓴다(본문 45p).
또한 목차 없이 작가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책의 편집 방법이 독특하다. 각 페이지는 옛 수동 타자기에서 용지가 올라오는 것처럼 한 줄씩 아래서 올라오는 구성으로 편집된다. 예술(글쓰기)을 다루는 책이지만 편집 방식 또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듯 보인다. 막연하게 ‘예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오래된 그림이나 음악 등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문학(문예) 또한 문자에 의한 예술작품으로 그 문학을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 또한 예술을 향유하는 활동이다. 2023년의 마지막, ‘책’이라는 예술을 권한다.
♣ 저자 소개 (저자: 요나스 메카스)
1922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요나스 메카스는 1949년 독일 나치를 피해 뉴욕 브루클린에 정착하면서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1954년 <필름 컬처> 잡지를 창간했고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빌리지 보이스에 '무비 저널'을 기고했다. 1962년 영화작가협동조합, 1964년 영화작가 시네마테크를 설립했다. 또한 그는 영화감독이자 위대한 예술가로 많은 영화와 25권 이상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브리그>로 1963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월든>(1969), <리투아니아 여행의 회상>(1972), <잠 못 이루는 밤 이야기>(2011), <행복한 사람의 삶에서 나온 아웃테이크>(2011)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2007년에는 1년 동안 매일 한 편의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영화 유통을 고민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극장 뿐 아니라 서펀타인 갤러리, 퐁피두 센터, 뉴욕현대미술관,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등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소개되고 소장되었다. 2019년 1월 23일 브루클린의 자택에서 향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