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최혜미
제목만으로 상상하게 되는 책이 있다.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하나의 문장이지만, 어쩐지 ‘계속 태어나는-’ 그리고 ‘당신에게’ 이렇게 나뉘어 읽게 된다.
‘당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한 다정 그리고 경애. 누구일까? 나(독자)에게? 아니면-
‘계속 태어나는’이라는 문장을 붙여 읽는다. 매 순간 매시간에 존재하는 나는 그 개별성에 의해 계속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겹겹의 시간을 덧쓴 나는 계속해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매혹적인 제목은 그것으로부터 독자를 놓지 않는다. 상상과 의문, 질문이 이어진다. 책장을 펼치는 것에 망설인다. 이 매혹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다. 상상으로 얽은 기대감이 만들어내는 망설임.
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이름이 있다. 문자 그대로 이름. 바로, 작가의 이름.
시를 읽고, 책을 종종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박연준 시인과 장석주 시인을 모를 리 없다. 이것은 서평을 쓰면서 내가 적는 몇 안 되는 확신으로, ‘두 시인이 한 예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로 그 확신은 더욱 견고해진다.
갈색 크라프트 종이에 아주 심플한 선과 글자로 이루어진 표지는 마치 편지 봉투를 연상케 한다. 두 시인이 쓴 편지가 차곡차곡 전개되는 것을 생각하면, 책 전체가 지니는 디자인적 요소가 무척 재밌다. 또 재밌는 점은 두 시인이 각기 앞/뒤표지에서 자신들의 글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박연준 시인이 에릭 사티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읽은 다음 책을 뒤로 엎어 장석주 시인이 에릭 사티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읽는 재미. 앞뒤를 오가며 느끼게 되는 것은 체험적 활동뿐만 아니라, 한 인물에 대한 두 시인의 시선과 감정을 비교하는 즐거움 그리고 서로 다른 문장이 한 인물로 향하는 마음의 헤아림까지.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도무지 죽지를 않는 사람들’인 열여덟 명의 예술가와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두 시인. 거기에 책의 의도가 안팎으로 스미도록 디자인한 디자이너와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기획하고 편집한 편집자까지. 예술가로부터 예술가에게, 예술가로부터 책에게. 거듭 태어나는 당신들을 나는 내내 생각할 것이다.
편지의 끝은 책의 중심과 닿아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두 시인이 서로가 서로에게 쓰는 편지로 맺는다. 구조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아름답다는 말이 끊이질 않는다.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제목은 죽음으로부터 삶까지,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리고 나아갈 미래에까지 끊임없이 뻗어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연준 시인이 장석주 시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을 발췌하며, 글을 맺는다. 이보다 더 이 책을 잘 이야기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하며.
편지를 쓰다보니 그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어려웠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들은 도처에 있잖아요. 그림, 노래, 책, 건축물, 영화, 시로 존재하죠.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새로 태어납니다.
그들을 생각하고, 제2 창작물을 제작하고, 추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태어나지요.
도무지 죽지를 않는 사람들. 계속 태어나는 사람들. 새 예술가를 탄생하게 만드는 존재들!
♣ 저자 소개 (저자: 박연준, 장석주)
박연준: 시인, 소설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쓰는 기분』 등이 있다.
장석주: 읽거나 쓰는 사람. 날마다 사과 한 알을 먹고 산책하는 사람. 느림과 침묵과 단순함을 좋아하는 사람. 더불어 음악, 팥죽, 작은 책방, 바다, 대숲, 여행, 포도주를 인생에 곁들여온 사람. 『마흔의 서재』 『철학자의 사물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외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목차
박연준
To. 에릭 사티
- 음악이 서성일 때, 그때가 좋습니다 …… 9
To. 프랑수아즈 사강
- 욕심 없이 열렬히 잃는다는 것 …… 17
To. 바츨라프 니진스키
- 진짜 재능은 자신을 느끼는 거예요 …… 25
To. 김소월
- 당신의 시가 당신의 것만이 아닌 일 …… 33
To. 존 버거
- 매우 지적인 동시에 매우 따뜻한 …… 43
To. 버지니아 울프
- 자기 삶을 스스로 세우는 것, 당신이 가르쳐준 거예요 …… 51
To. 빈센트 반 고흐
- 당신은 누구보다 슬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입니다 …… 59
To. 알바 알토
- 제게 ‘멋지다’란 단어는 당신 이름과 동의어랍니다 …… 69
To. 프란츠 카프카
-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는 당신에게 …… 77
To. 페르난두 페소아
- 당신은 제 영혼의 청소부입니다 …… 85
To. 실비아 플라스
- 사랑을 위해 당신은, 사랑의 목을 조르지요 …… 93
To. 권진규
- 외로움이 말라죽으면 고독이 되는 걸까요 …… 101
To. 나혜석
- 이 모든 건 우리에 앞서, 당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109
To. 로맹 가리
- 12월 2일, 오늘은 당신의 기일입니다 …… 117
To. 배호
- 당신의 목소리는 뱃고동 소리를 닮았어요 …… 125
To. 장국영
- 당신은 꼭 사월처럼 생겼어요 …… 133
To. 다자이 오사무
- 엄살쟁이라고 문학에까지 엄살을 부린 건 아니었지요 …… 141
To. 박용래
- 누가 울보 아니랄까봐 얼굴까지 눈물을 닮으셨나요? …… 149
작가의 말을 대신하며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네요 - 장석주 시인에게 …… 157
장석주
To. 에릭 사티
- 나는 아주 가끔씩만 당신의 음악을 듣습니다 …… 9
To. 프랑수아즈 사강
-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17
To. 바츨라프 니진스키
- 살 속에서 부러진 뼈가 튀어나오듯 춤은 당신의 몸에서 …… 25
To. 김소월
-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기다리고 있나요? …… 33
To. 존 버거
- 삶이 고독한 1인극이 아니냐고 말하는 당신에게 …… 43
To. 버지니아 울프
- 당신의 왜 그토록 거리 배회에 탐닉했을까요? …… 51
To. 빈센트 반 고흐
- 평생 겨우 두 작품만 돈을 받고 팔았으니까요 …… 59
To. 알바 알토
- 좋은 건축은 고전음악만큼이나 아름다움에 헌신합니다 …… 67
To. 프란츠 카프카
- 행복의 문턱에서의 긴 망설임 …… 75
To. 페르난두 페소아
- 왜 그토록 많은 이명이 당신에게 필요했을까요? …… 83
To. 실비아 플라스
- 죽음의 방향을 기막히게 맡은 여성 사제였지요 …… 91
To. 권진규
- 고독의 견결함을 빚은 뒤 표표히 적멸의 길로 들어선 …… 99
To. 나혜석
- 당신은 이 낡은 세계에 너무 일찍 도착한 선각자였지요 …… 107
To. 로맹 가리
-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소. 그럼 안녕히. …… 115
To. 배호
- 거기 천국에서도 노래를 부르십니까? …… 123
To. 장국영
- 당신은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만 …… 131
To. 다자이 오사무
- “나는 지금 너무 외로워. 오늘부터 수족관을 만들 계획이야.” …… 139
To. 박용래
- 호박잎에 모이는 빗소리 같던 용래 성님의 시 …… 147
작가의 말을 대신하며
무용한 아름다움을 좇는 이들을 사랑했다고 고백합니다 - 박연준 시인에게 ……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