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최혜미
책을 읽는 독자로써, ‘번역’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명성만큼 널리 알려진 이 소설은 영화로도 크게 흥행할 만큼 형식을 넘나들며 사랑받고 있는데, 그 덕분인지 번역본만 11권이 넘는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 것’은 문장이다. 특히 「위대한 개츠비」는 첫 문장이 중요한데,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김영하 소설가의 번역본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비교를 위해 열림원의 김석희 번역가의 첫 문장과
내가 지금보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리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하나 해주셨는데,
그 충고를 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되새기곤 한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민음사의 김욱동 번역가의 첫 문장을 가져와 본다.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처럼, 그 의미는 같지만 미묘하게 다른 늬앙스와 분위기로 글은 시작된다. 거기에서부터 번역가의 개입이 시작되는 것이다. 원문과 독자 사이, 눈을 감고 있는 독자에게 원문을 읽어주는 목소리. 그것이 번역가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원문을 읽지 않는 이상 우리는 번역가의 글을 읽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하고 보니, 최근 번역가가 쓴 책이 많이 나왔다. 번역 강의로써의 책이 아닌, 실제 번역하는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본 문학을 읽다 보면, 한 번은 들어봤을 권남희 번역가의 「혼자여서 좋은 직업」, 번역가이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김욱동 번역가의 「번역가의 길」, 25년 차 제테랑 번역가가 읽는 사람을 위해 쓴 「번역의 말들」까지. 그제야 저자의 이름 옆에 나란히 적혀 있는 그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 그것은 생각이며, 사고이며, 신념일 것이다.
책 「번역가의 인간학」은 이러한 생각에 응답하듯 말한다.
번역가가 쓰는 ‘옮긴이의 말’ 또는 ‘해제’에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뜻에서이다.
여러 번역 이론가들이 말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번역은 애초부터 번역가 개인의 해석과 평가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일종의 (감상)비평 행위이기도 하기에, 번역에 더해 텍스트에 관해
번역가가 직접적으로 비평하는 작업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번역한 책 가운데 열한 권에 실은 옮긴이의 말과 해제를 모으고, 마지막에 자신의 번역론을 써서 묶은 책이다. 선정된 책 또한 ‘인간에 관한 진정한 앎의 문제’를 다루는 것들로, 저자는 자신이 고심하여 고른(그리고 그것 일 수밖에 없는) 책의 제목 「번역가의 인간학」에 입각하여 진행된다. 열한 권이 모두 다르지만, 저자가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옮긴이(역자)의 글은 저자의 글과 추천사, 그 사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와 아주 가까우면서도, 그것을 읽은 이들보다는 더 깊은 바로 그런 자리. 그렇기에 누구보다 그 책에 관해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역자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해당 작품에 흥미를 느껴 다가가게 되거나, 읽은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다. 저자의 비평 에세이는 책을 읽는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번역서를 대해야 하며, 책의 번역가가 바라보는 시선(인간학)이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경험케 한다.
파파고 등 A.I.의 번역이 손쉽게 이루어지는 시대이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사람을 대체하는 A.I.의 영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이 책을 떠올린다면 어떨까. ‘번역’이라는 행위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야기하고, 탐구한 저자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다른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인간만이 인간의 언어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은, 특정 시공간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해석되는 인간의 언어를 인간만이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본래 번역은 인간 언어의 본질, 나아가 인간의 본질 그 자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번역이 인간의 번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의 본질을 인공지능의 본질로 환원하는 것인가?
♣ 저자 소개 (저자: 정홍섭)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아주대학교 다산학부대학 교수이다.
역서로 『감의 빛깔들』, 『전설의 야수 연대기』, 『아일랜드 왕자』, 『나리가 짠 햇빛 목도리』, 『상상력과 인지학』, 『파르치팔과 성배 찾기』, 『코페르니쿠스: 투쟁과 승리의 별』, 『발도르프 학교 외국어 교육』, 『신성한 씨앗』, 『에드먼드 버크 보수의 품격』,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 『탐욕사회와 기독교 정신』, 『스스로 지키는 온건강』, 『생각을 확장하다』, 저서로 『채만식 문학과 풍자의 정신』, 『소설의 현실 비평의 논리』, 『영어공부와 함께한 삶의 지혜를 찾는 글쓰기』, 편저로 『채만식 선집』, 『치숙』, 『원본비평정본 탁류』 등이 있다.
♣ 목차
추천의 말 | 감사의 말씀 | 서문
1 동화와 미술을 통해 본 인간의 참모습
- 모니카 골드, 『상상력과 인지학』, 푸른씨앗, 2012
2 파르치팔과 함께 하는 자아 찾기 여행
- 찰스 코박스, 『파르치팔과 성배 찾기』, 푸른씨앗, 2012
3 진실의 영원성을 가르쳐 준 사람, 코페르니쿠스
- 하인츠 슈폰젤, 『코페르니쿠스: 투쟁과 승리의 별』, 과천자유학교출판국, 2008
4-1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생각해보는 보수의 품격
- 에드먼드 버크, 『에드먼드 버크 : 보수의 품격』, 좁쌀한알, 2018 & 2021
4-2 『에드먼드 버크 : 보수의 품격』 개정판 출간에 부쳐
- 에드먼드 버크, 『에드먼드 버크 : 보수의 품격』, 좁쌀한알, 2018 & 2021
4-3 『에드먼드 버크: 보수의 품격』, 보수란 무엇인가?
- (주) 멀티캠퍼스(SERICEO) 강의 원고(2021.2)
5 벤담과 밀, 민주주의와 행복을 논하다
- 제러미 벤담·존 스튜어트 밀,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 좁쌀한알, 2018
6 사회주의라는 거울에 비친 J. S. 밀의 사회개혁론과 인간학
-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주의론』, 좁쌀한알, 2018
7 R. H. 토니의 기독교 정신과 ‘도움 되기’의 사회경제 사상
- R. H. 토니, 『탐욕사회와 기독교 정신』, 좁쌀한알, 2021
8 그리운 리타 선생님
- 리타 테일러, 『감의 빛깔들』, 좁쌀한알, 2017
9 GMO 추방과 토종 씨앗 지키기-살아남기의 길
- 골든 수피 센터 엮음, 『신성한 씨앗』, 좁쌀한알, 2017
10 건강, 내가 만드는 인간 네 요소의 균형
- 마이클 에번스·이언 로저, 『스스로 지키는 온건강 : 인지의학 입문』, 좁쌀한알, 2022
11 외국어 공부의 깨달음을 향해
- 에르하르트 달, 『발도르프 학교 외국어 교육』, 푸른나무, 2021
12 번역과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