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정찬종
“여기 한 법대생이 있습니다. 그는 머리가 좋아서 무엇이든 쉽게 깨치고 기억도 잘하죠. 하지만 가난한 형편에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그의 눈에 어느 날 가난한 사람들의 물건을 저당 잡아 재산을 모은 한 노파가 들어옵니다. 부당하고 불공평한 현실 속 법과 도덕의 잣대에서 고민하는 청년. 과연 청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 내용 중 도스도옙스키의 ‘죄와벌’ 소개를 재편집하여 작성한 글이다. 주말 아침, 보편보다 더 재미있게 영화를 소개해주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처럼 책을 재미있게 소개해 주는 책이 있다면 어떨까?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은 기독교 출판계에서 번역가로 일하는 저자가 펴낸 24권의 문학 소개서이자 독서법 안내서이다. 24권의 문학작품이 그대로 목차에 들어간 책의 각 장은 문학 작품에 대한 소개, 저자의 캐릭터 해석, 주요 내용 해설 등으로 채워져 있다. 오랜 시간 번역가로 일한 저자인지라 각 작품에 대한 요약과 해석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어, 책을 읽은 사람에겐 다각도에서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무리 없이 깊은 독서의 세계로 발을 들일 수 있다.
그래서 명작이라고 하나 보다. 읽고 나서 이렇게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내 생각이 돌아가는 방식과 전제와 한계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상과 현실을 모두 부여잡고 그에 따른 긴장과 무게와 부담과 좌절과 고통과 막막함을 그대로 껴안고 그려 내기 때문에 이 작품은 고전으로 남았고 도스도예프스키는 불멸의 작가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p.104)
각 장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 자체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딕’,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등 저명한 작가의 문학을 다루고 있어 독자의 흥미를 이끈다. 또한 각 장 말미에 함께 읽고 나누기 좋은 질문을 덧붙여 책을 온전히 읽고 사유하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다.
리어왕은 자신이 가진 전부를 걸고 자식들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다. 자신이 가장 귀한 것을 주면 상대방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다. 가진 것 전부를 걸고 도박을 했다고 할까. 어쩌면 진정한 로맨티스트의 면모라고도 할 수 있다. 약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딸들의 진심을 믿지 않았다면 뭔가 핵심적인 카드는 끝까지 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전부를 걸었다. 물론 권력을 통해 얻은 것을 권력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받으려 한 것은 오판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확인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쓰라리게 배워야 했다(p.53).
서명인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은 C.S.루이스의 ‘스쿠루테이프의 편지’에 나오는 지혜로운 악마 스크루테이프의 보여주는 새로운 것을 보는 시각을 의미한다. 독서를 할 때 의식의 흐름대로 한 장씩 읽어 나가는 것도 좋지만, 한 번쯤 다른 시각에서 작가의 의도나 등장인물의 의중을 생각해 보면 책의 또 다른 면이 보일 때가 있다. 가끔은 뻔한 시각이 아닌, 악마의 눈으로 책을 접하길 바라며 이 책을 권한다.
♣ 저자 소개 (저자: 홍종락)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고,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다. 2014년 한국기독교출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역자상’을 수상했다.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 《한밤을 걷는 기도》, 《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 《존 파이퍼의 초자연적 성경 읽기》(이상 두란노), 《영광의 무게》(홍성사), 《한나의 아이》(IVP), 《소설 읽는 신자에게 생기는 일》(무근검) 등을 번역했다. 저서로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비아토르), 《오리지널 에필로그》(홍성사)가 있다.
♣ 목차
서문_ 생계형 독서와 취미형 독서의 만남
01 오셀로, 이아고 그리고 《커튼》 _《오셀로》
02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다가 나온 선택들 _《현명한 피》
03 내가 누리는 것들의 근거 _《황폐한 집》
04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 _《허클베리 핀의 모험》
05 고래가 말하는 것 _《모비 딕》
06 난 나를 지키려고 해 _《이토록 고고한 연예》
07 시공을 뛰어넘는 순례 길의 시뮬레이션 _《천로역정》
08 부탁한 적 없는 은혜에 관하여 _《두 도시 이야기》
09 주홍 글자, 그 잔인한 자비 _《주홍 글자》
10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여정 _《로드》
11 리어왕이 거부한 것 _《리어왕》
12 초인이 되는 법 _《죄와 벌》
13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침묵》 _《침묵》
14 무서운 이야기에 관하여 _《프랑켄슈타인》
15 신화의 재발견 _《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16 비루한 자신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명감 _《권력과 영광》
17 《로빈슨 크루소》,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_《로빈슨 크루소》
18 장 발장은 왜 프티제르베의 돈을 훔쳤을까? _《레미제라블》
19 장 발장의 멀고 험한 길 _《레미제라블》
20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 _《스크루테이프의 편지》
21 《산둥 수용소》가 말하는 종교의 자리 _《산둥 수용소》
22 아슬란과 그를 아는 지식 _《나니아 연대기》
23 《백치》, 그의 선택 _《백치》
24 남은 자에게 찾아온 축복 _《길리아드》
25 두 번째 기회 _《이선 프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