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양예진
궁궐이라 하면 흔히 왕이 나라를 다스리며 거처하던 공간을 떠올린다. 그래서 궁궐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왕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 백성들의 ‘직장’으로서 궁궐을 새롭게 조명한다. 조선 궁궐은 최대 규모의 일터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거대 조직이었다. 그렇기에 궁궐에서 일한다는 것은 큰 자부심이었고, 무급이거나 계약직일지라도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일하길 원했다. 궁궐은 모두가 꿈꾸는 최고의 직장이었던 셈이다.
궁궐에서 일한 사람들의 신분은 양반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업무도 관리직·비서직·사무직·기술직·전문직 등으로 세분되어 있었다. 수천 명의 직장인이 저마다의 역할을 맡아 궁궐을 체계적으로 운영한 것이다. 이 책은 궁궐의 직업군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이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당시 사람들이 선호한 직종을 살펴보면, 어떤 가치를 중시하며 살아갔는지 엿볼 수 있다. 조선 사람들 역시 좋은 일자리를 원했고, 각자의 상황과 기준에 따라 직업을 선택했다. 예컨대 ‘별감’이라는 직군은 월급은 적었지만, 업무 강도가 낮고 개인 시간이 많아 인기가 높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워라밸’과 비슷한 가치가 이미 그 시대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직업의 이상적인 면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인기 있는 자리일수록 경쟁이 치열했고 내부 갈등과 질시도 따랐다. 기득권자의 횡포로 고통받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월급이 없는 관리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을지 생각해 보면, 궁궐에 부정부패가 만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단순한 부패로만 보지 않는다. 당시 사회 구조와 관습 속에서 이런 행태는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기에, 지금의 기준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의 시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친절하고 흥미롭게 쓰였다. 궁궐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그 안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닮은 점을 발견하게 한다. 독자는 이를 통해 공감과 사유를 경험하며, 나아가 직업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일터에서 어떤 가치를 좇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저자 소개 (저자: 박영규)
밀리언셀러 역사 전문 작가. 1996년 200만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한 이후 27년 동안 고려왕조실록에서 일제강점실록까지 '한 권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를 펴냈다. 역사서 외에 역사문화 에세이, 동서양철학사 등 폭넓은 관심 분야만큼 집필 분야도 다양하다.
목차
서문_ 궁궐은 조선 시대 최고의 일터였다
0장 궁궐 조선에서 가장 핫한 직장
1장 홍문관 문관들의 직장 선호도 1위
2장 예문관 목숨 걸고 역사를 기록하는 곳
3장 승정원 정승 판서로 가는 징검다리
4장 사간원 직언과 직간
5장 승문원 외교의 최전선
6장 교서관 인쇄와 글씨 전담
7장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 세자 보필
8장 상서원 옥새와 병부 관리
9장 내의원 궁궐 속 왕실 전담병원
10장 의녀 조선의 여의사
11장 궁녀 왕족의 생활비서
12장 환관 왕족의 최측근 수행비서
13장 경연청 왕을 위한 정치 학교
14장 선전관청 무관들의 직장 선호도 1위
15장 금군청 최정예로 이뤄진 왕의 친위부대
16장 오위도총부 조선의 합동참모부
17장 관상감 천문과 풍수 업무
18장 사복시 말과 목장 관리
19장 전설사 장막과 차일 전담
20장 내수사 왕실 재산 관리
21장 사옹원 조선 최고 요리사들의 일터
22장 상의원 조선 패션을 선도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