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이승민
별이 빛나는 밤, 아몬드 나무 그림으로 모르는 이가 없는 세계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살아생전 그 작품의 가치를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그림을 그릴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명성의 예술가 중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원래 배고픈 게 예술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들이라고 왜 인간으로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타인의 평가에 의해 나의 과업이 좌지우지되는 삶이란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 안 역시 그런 어려움을 겪는 전형적인 신예 예술가였다. ‘예술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게 현명한 삶일까?’ 이 정도 했는데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나는 예술가로서 재능이 부족한 것일까? 아마 그런 의문을 끊임없이 가지며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끈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안의 앞에 나타난 ‘로버트’ 작품 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주되 조건은 하나, 작품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본 수많은 실존 예술가와 예술에 관한 명언을 떠올리게 된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칠 것이다.’ 과연 예술은 그 자체로 예술적이기에 예술로 평가받는 것일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군가의 의도적인 홍보로 작가를 유명하게 만들고, 그림값을 일부러 경매 시스템을 통해 값어치를 올리고, 예술 자체가 아닌 그 작품이 얼마인가? 하는 금액으로 대중들은 가치를 평가한다. 벽에 바나나를 놓고 테이프로 붙여놓기만 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이라는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왜 바나나를 벽에 붙인 거지? 장난인가?’라고 말했지만 그 작품의 가격이 1억 4천만원이 넘는다고 하자 ‘이게 1억 4천만원 정도의 가치를 가진 작품인가 봐’라며 작품을 찬양하는 온갖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었다. 세계적인 그래비티 화가 ‘뱅크시’는 그런 예술계의 폐해를 알리기 위해 일부러 ‘풍선을 든 소녀’ 작품을 엄청난 가격에 경매에 내놓은 뒤 그림이 팔리자마자 그림의 절반을 파쇄기에 갈아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 그림의 가격은 더 상승했다. 반절은 갈려버린 그림인데도 말이다.
‘무엇이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이 소설은 그 뱅크시의 갈려버린 그림을 떠올리게 하기도, 아무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1억 4천만원짜리 바나나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예술이 예술 자체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정말 유명해지기 위해서 내 예술적 신념을 포기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은 거의 모든 예술가가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질문이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주인공 안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정말 그녀가 유명세를 얻어 예술을 계속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불태울 수 있을지, 아니면 작품을 지키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지 궁금해하며 계속 읽어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처음엔 한 가난한 예술가의 결정에 대한 궁금증은 그 제안을 한 로버트라는 존재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이야기가 한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작품임을 느끼게 된다.
어떤 판단이 옳은 것일까? 그대로 작품을 불태우지 않는다면 다시 궁핍한 생활로 돌아가 생활고에 견디지 못해 예술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한 작품만 불태운다면 유명해져 예술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를 희생할 것인가 신념을 지킬 것인가? 이 어려운 질문을 통해 나는 예술의 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얻은 것 같았다.
♣ 저자 소개 (저자: 윤고은)
2008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장편 소설 『무중력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 『도서관 런웨이』, 『불타는 작품』 등을 썼다.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 등을 수상했다.
♣ 목차
불타는 작품 * 7
작가의 말 * 343
작품 해설 / 그러나 오아시스는 있다_정여울(문학평론가) * 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