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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언어
진화하는 언어
  • 저자 : 닉 채터 ; 모텐 H 크리스티안센 [공]지음 ; 이혜경 옮김
  • 출판사 : 웨일북
  • 발행연도 : 2023년
  • 페이지수 : 447p
  • 청구기호 : 709-ㅊ182ㅈ
  • ISBN : 9791192097442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오재식

 

언어는 게임의 산물에 불과하다!”

과거, 어느 한 교수가 강의에서 한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5~60대는 TV로 소통하고, 40대는 페이스북, 2~30대는 인스타, 10대는 틱톡으로 소통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소통방식이 다르니 당연히 대화가 통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같은 한국인이어도 같은 지역이어도 왜 소통이 어려운 것일까? 언어의 소통으로 집단지성이 발달하여 오늘날의 사회가 형성됐다. 그럼 언어의 기원과 형성과정은 무엇일까?

1769, 영국 군함 인데버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남아메리카의 굿 석세스만에 상륙했다. 그리고 그곳의 원주민인 하우시족들과 조우하였고, 작은 막대기를 들어 보였다가 던짐으로써 서로 공격 의사가 없다는 걸 전달했고, 이윽고 원주민들은 배에 올라 음식을 대접받는 등 문화교류를 가졌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우시족은 거의 입도 대지 않은 채 술잔을 물렸다. 상대방이 나를 해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미지의 문화와 외지인과 소통하려는 욕구로 이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우시족이 싸울 의사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막대기를 던진 것은 문화와 언어를 넘나든 마치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은 제스처 게임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들어 언어의 협력적 의사소통을, 언어의 제스처 게임이라 명명하며 핵심 단어로 사용한다. 언어란 본질적으로 상황과 맥락에 맞게 만들어지는 해석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이 시사하는 바는, 언어가 체계적이고 정형화된 수동적인 성질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의미와 개념이 변하는 유동적인 성질임을 말한다.

제스처 게임이라는 단어로 저자는 무엇을 서술하고자 하는가? 최근 아이들의 문해력 수준 저하 문제가 제기되면서, 동시에 다양한 신조어의 발생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 둘은 접점이 있되 명백히 다른 개념의 문제다. 그럼 각종 신조어들의 출현은 언어의 질적 수준을 낮추는 저해 요소인 것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 수단들은 과거 수백만 번의 상호작용 순간을 거치며 그때그때 당면한 즉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왔다. 언어가 학교 교사와 위엄 있는 학문기관, 자칭 문법 전문가들의 간섭 없이 제멋대로 흘러가도록 방치된다고 해서, 뜻도 통하지 않은 채 꿀꿀거리는 돼지 소리로 전락하지는 않는다.(본문 201p).

 

새로운 신조어가 발생하고, 흔히 MZ세대에 의한 언어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그것이 곧 언어의 퇴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언어는 혼돈 속에서 불완전하지만 그로 인해 더 나은 언어적 표현 수단으로써 창조되고 진화해왔다. 언어의 질서가 무너진다고 해서 지속적인 수리와 조정을 받지 않은 기계 부품 마냥 고장나버리지 않는단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언어의 기원은 언어적 제스처 게임의 발명으로 생물학적인 능력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진화해왔다고 한다. 언어란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듯 뇌에 입력하는 것이라던가, 인간은 정치적 능력 때문에 언어 능력이 발달됐다던지, 다른 언어학의 학설에 비해 비교적 대중적으로 와닿는 주장이다. 즉 언어는 체계적인 문법을 바탕으로 발달해온 설계론적인 관념이 아닌, 지식이나 그 순간의 필요가 이룬 서툴고 무질서한 산물에 불과하단 것이다.

언어에 대한 기존 연구의 관념을 부정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굉장히 도전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GPT, AI언어에 대해선 결국 통계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부정한다.

래커는 마지막 사례를 통해 GPT-3가 의미 있는 대화 참여자가 아니라 문장의 파편을 뒤섞어 그럴듯하게 뱉어내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본문 390p).

인간이든 GPT-3든 둘다 짧은 이야기와 제품 매뉴얼을 쓰고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질문에 답하는 것 같은 단순한 과제를 언어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GPT-3가 인간의 정신을 흉내 내는 것은 아니다. (본문 391p).

 

제스처 게임은 지식을 유연하게 창조적으로 활용해 솜씨 있게 즉흥극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언어가 살아있는 유기체 마냥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의미로는 AI언어와 완전히 상극을 이루는 것이다. AI언어는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통계를 해석하고 패턴을 학습해 그럴듯하게 조합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즉 인간의 언어는 AI언어와 달리 고정된 언어 규칙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창조해나가는 성질을 가진 것이다.

개인적으론 너도 나도 단골소재로 쓰는 AI에 대해선 잠깐 언급하는 정도인 점이 전문성을 느낄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 결론이 결국 현재로썬 AI는 인간의 언어를 흉내낼 수 없다 라는 다소 범용적인 결론에 그쳐 아쉽게 느껴졌다. 또한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쌓아온 언어의 역사에 대해 잘 풀어냈으나, 앞서 다가올 날에 언어는 어떤 방식으로 진화를 거칠지 그에 대한 예측이나 피드백이 부족하다는 점은 옥의 티로 남는다. 그러나 언어의 복잡성과 질서가 무수한 언어의 제스처 게임 속에서 빚어진 우연의 산물이며, 주고 받는 핑퐁 게임의 방식이 기원임을 서술한다는 것이, 언어학적으로 꽤 흥미로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 소개 (저자: 모텐 H. 크리스티안센)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해스킨스 연구소 과학자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커뮤니케이션과 문화 학부에서 언어 인지과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언어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는 중이다. 특히 언어의 문화적 진화와 언어 습득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다. 200편이 넘는 과학 논문을 썼으며 네 권의 책을 편집했다.

 

목차


들어가는 글: 세상을 바꾼 우연한 발명

1장 언어는 제스처 게임이다

2장 언어의 찰나적 속성

3장 참을 수 없는 의미의 가벼움

4장 혼돈의 경계에 선 언어 질서

5장 언어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6장 언어와 인류의 발자취

7장 무한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형태들
8장 뇌, 문화, 언어의 사이클

 

나가는 글: 언어가 기술적 특이점에서 우리를 구해낼 것이다

그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