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김영의
“연금술은 사기가 아니라, 과학의 첫 번째 언어였다.”
이 문장만큼 오늘 소개하는 책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쇳덩어리를 금덩어리로 바꾸려는 연금술의 신비한 이야기 뒤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의 기원이 숨어 있다. 저자는 대학 화학과 교수로, 교과서가 미처 다루지 못한 연금술과 화학의 깊은 연결고리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흔히 연금술을 비이성적인 미신쯤으로 여기지만, 저자는 단언한다. 연금술은 허황된 욕망의 산물이 아니라, 물질 세계를 이해하려는 치열한 시도의 역사였다고.
책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에서 출발해 이슬람과 중세 유럽을 거쳐 근대 화학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간다. 연금술의 실험 기록 속에는 화학 반응의 기초와 물질의 구조를 탐구한 흔적이 가득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뉴턴과 보일 같은 과학자가 사실은 완벽한 연금술사였다는 사실은, 독자의 과학관을 완전히 뒤흔든다. 이처럼 책은 연금술이 지닌 지식 체계로서의 합리성을 밝혀낸다. 금속의 변성을 실험하던 연금술사는 물질의 본성을 탐구했고, 그 탐구의 집요함이 오늘날 화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와 원자론을 정립한 과학자들 또한 결국 연금술사의 후예였다. 저자는 현대 화학 역시 여전히 연금술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지적하며, 진리를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실험과 관찰 속에서 갱신되는 것으로 보는 태도야말로 연금술이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이라고 말한다.
『알케미아』는 과학사에 대한 책이자,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 애써온 지적 모험의 기록이다. 돌을 금으로 바꾸려던 그 허무맹랑한 꿈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금 같은 지식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본다. 현대의 실험실에서 주기율표를 바라보는 과학자나, 낡은 작업대 위에서 황과 수은을 섞던 연금술사나,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 단순한 물음 하나가 수천 년의 과학을 움직였다. 『알케미아』는 우리가 잊고 있던 과학의 낭만과 탐구의 열정을 되살려준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자신의 가족을 ‘엘릭시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책을 만난 독자 또한 자신만의 엘릭시르(“연금술에서 말하는 만능약)를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저자 소개 (저자: 최정모)
부산대학교 화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과학사로 석사 학위를, 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0년에 부산대학교 화학과에 교수로 부임했고 2022년 대한화학회와 와일리Wiley 출판사에서 수여하는 ‘KCS-Wiley 젊은화학자상’을 수상했다. 생명의 물리화학적 원리를 연구하고 있으며 화학과 화학사를 널리 알리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목차
들어가는 글 연금술은 패배한 과학, 화학은 승리한 과학이라는 편견 ● 5
1부 연금술의 여명, 세계를 설명하려는 욕망
1장. 고대 그리스, 연금술의 두 뿌리 ● 19
2장. 이슬람 연금술, 물질에 대한 체계적 학문이 되다 ● 29
3장. 중세 유럽, 현자의 돌을 찾아서 ● 40
2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연금술
4장. 연금술의 황금기, 우주와 인간의 구성 원리는 동일한가 ● 55
5장. 로버트 보일, 회의적 연금술사 ● 67
6장. 아이작 뉴턴, 완벽한 연금술사 ● 79
3부 혁명의 발발, 과거에 대한 단죄
7장. 연금술과의 결별, ‘화학’이라는 것을 만들기 ● 91
8장. 화학 혁명이 단두대에 올린 것은 ● 102
9장. 이름 짓기와 수학화, 혁명을 완성하다 ● 121
4부 원자, 세계의 근본을 설명하는 유구한 도구
10장. 세기 초 뜨거웠던 두 논쟁, 이론이란 무엇인가 ● 135
11장. 돌턴의 원자설, 이미 도착해 있던 근대 화학 ● 147
12장. 원자설은 모든 화학자를 설득했는가 ● 159
13장. 베르셀리우스, 정확하고 정교한 화학 ● 172
5부 오래된 난제, 생명의 물질
14장. 생명의 물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187
15장. 화학 삼총사 리비히, 뵐러, 뒤마와 새로운 이론들 ● 201
16장. 리비히의 왕국, 화학을 확장하다 ● 212
17장.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결 ● 224
6부 번영하는 화학, 연금술이라는 거울상
18장. 1850년대, 실재에 대한 탐구부터 산업적 성공까지 ● 235
19장. 카를스루에 회의, 화학 최초의 국제 학술 대회 ● 246
20장. 분자의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하다 ● 260
21장. 누가 주기율표 탄생의 공을 가져야 하는가 ● 272.
나가는 글 실용주의, 연금술, 화학 ● 284
감사의 글 ● 291
참고 문헌 ● 293
주 ● 297
그림 출처 ● 311
찾아보기 ●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