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지현
출근길이 다소 긴 편이라, 지하철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꽤 있다. 그 시간을 자기개발에 쓴다고 말하고 싶지만, 책을 읽다가도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내고 만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맨 위부터 하나씩 누르다보면, 짧은 유머 글도 있지만 꼭 한 번씩은 혐오와 비난이 가득한 글들을 보게 된다.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보게 되면 눈쌀이 찌푸려지지만, 가장 자괴감이 느껴질 때는 무의식적으로 그 글에 공감하는 나를 볼 때이다.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표지만 보자면 사람들에게 한마디 위로를 건내는 듯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들의 혐오의 단편이 담겨 있다.
저자는 들어가며에 '말이 파괴었다.'라 말한다. 이것은 단어가 아니라 말의 혼, 존귀함, 긍정적인 힘들이 파괴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말에 구원받는 다는 것'이라는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차별, 혐오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일본 원 저작을 번역한 것이라, 일본에 대한 사건사고를 담고 있는데, 읽다보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사건이 떠오르고 그 양상마저 비슷해 씁쓸한 기분이 든다. 또한 우리가 쉽게 건내는 위로, 기대의 메시지가 다른 사람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평소 나의 말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언어생활에 대해 분석하는 책도 있었지만, 이번엔 일부러 가깝지만 먼 일본의 번역서를 선택해보았다. 직접적인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 한 발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부끄럽게도 책의 메시지는 가시처럼 내 마음에 박힌다. 내가 불편해지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라 생각하며 나의 말을 파괴하고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쳐 보였으니까. 얇지만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들이다. 다행이 조각글들이 모여 있는 형식이니 생각날 때마다 책장을 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위로나, 격려의 말이 힘들어진, 그저 말이 싫어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저자 소개 (저자: 아라이 유키)
문학 연구가. 1980년 출생. 소수자의 자기표현법과 장애인의 사회 활동을 연구하고 있다. 도쿄대학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를 수료했고 현재 니쇼가쿠샤대학 문학부의 부교수이다. 2021년에 말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찰한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을 발표했으며, 이 책은 출간 2주 만에 증쇄되면서 서점 관계자와 독자 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22년 3월에는 철학자 이케다 아키코(池田晶子)를 기념해 1년에 단 한 명에게만 수여되는 ‘나, 즉 Nobody 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장애인 페미니스트 요네즈 도모코가 도쿄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에 빨간 스프레이를 뿌려 국제적으로 큰 화제를 일으킨 사건(1974년)을 다룬 책 『늠름하게 빛나다』를 발표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 밖의 저서로는 『격리의 문학?한센병 요양소의 자기표현사』, 『장애와 문학?‘동 틀 녘’에서 ‘푸른잔디회’로』, 『살아가는 그림?예술이 사람을 ‘달랠’ 때』, 『장애인 차별을 다시 묻다』, 『휠체어 옆에 사는 사람?장애로부터 바라보는 ‘생의 어려움’』 등이 있다.
♣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들어가며: ‘파괴된 말’에 분개하다
- 제1화: 미치는 게 정상
- 제2화: 격려를 포기하지 않기
- 제3화: 사전에는 없는, ‘희대’라는 말의 태도
- 제4화: 마이너스 감정을 처리하는 비용
- 제5화: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뜻이 아니야
- 제6화: 장애인 시설 살상 사건이 망가뜨린 것
- 제7화: 나라를 위한 쓸모가 없었던 사람
- 제8화: 책임의 ‘층’
- 제9화: 분위기에 지워지는 목소리
- 제10화: 선을 지키는 말
- 제11화: 마음의 병의 ‘애당초론’
- 제12화: 살아 있다는 느낌이 죽어갈 때
- 제13화: 살아가는 데 사양이 필요 있을까?
- 제14화: ‘서로 입 다물리기’의 연쇄를 끊어야 할 때
- 제15화: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라
- 제16화: 내 천 자로 잔다고 하는구나
- 제17화: 말이 ‘문학’이 될 때
- 마지막 이야기: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나오며: 정리되지 않는 것들을 귀히 여기다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