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전은비
우리는 ‘실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실패를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고,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24년 대국민 조사 결과, 73.5%의 사람들이 “실패가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조사에서 무려 77.2%가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고 답했다. 개인의 인식과 사회의 분위기 사이에 뚜렷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2021년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은 “성공률이 80%가 넘는 연구 과제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이는 한국의 국가 연구개발 과제 평균 성공률이 99%에 달한다는 사실과 대조적이다. 국가 연구개발 과제의 높은 성공률은 표면적으로는 성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패할 리 없는 안전한 과제만을 택한 결과일 수 있다. 즉, 한국 사회가 실패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불리는 카이스트에서 ‘실패 연구소’를 세웠다는 사실은 언뜻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아이러니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성공만 해왔을 것 같은 집단에서조차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회피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우리는 왜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정작 실패할 기회는 허용하지 않는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이를 무모하다고 비난하고,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 도전을 주저하게 된다. 결국 실패의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실패할 기회 자체를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실패연구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토보이스’라는 질적 연구 방식을 도입했다. 카이스트 학생 30여 명이 3주간 실패나 실패감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포착하는 실험이었다. 다소 논문처럼 쓰여진 책의 흐름 속에서 이 부분은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실패를 단순히 미화하거나 성공의 과정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실패를 둘러싼 사회적 모순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고민한다. 카이스트라는 최고 수준의 교육기관에서조차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상징이다. 결국 이 책은 ‘실패할 권리를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실패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 소개 (저자: 안혜정, 조성호, 이광형)
안혜정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 중앙대학교에서 사회 및 문화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사회 문제에 관여하는 한국인의 가치관과 인식을 문화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한다. 2018년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실패박람회 ‘실패 의제 연구’에 참여했고, 실패박람회 및 재도전 프로젝트 민간 기획단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1년부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 캠페인, 뉴스레터 등을 기획하며 실패에 관한 문화적 인식과 대처 역량을 연구하고 있다.
조성호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후 MIT에서 기계공학과 전자전산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로-기계 증강 지능 연구실(Neuro-Machine Augmented Intelligence Lab)을 운영하면서 인공 지능이 인간과 상호 보완하며 인간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기술들을 연구한다. 2023년부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카이스트 구성원에게 실패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우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광형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후 MIT에서 기계공학과 전자전산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로-기계 증강 지능 연구실(Neuro-Machine Augmented Intelligence Lab)을 운영하면서 인공 지능이 인간과 상호 보완하며 인간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기술들을 연구한다. 2023년부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카이스트 구성원에게 실패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우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목차
추천의 말
머리말: 왜 우리는 실패를 주목해야 하는가
1장 카이스트가 실패연구소를 만든 이유
언제까지 뒤에서 쫓아가기만 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실패를 드러내고 공유하자
2장 실패 캠페인의 이상과 현실
실패연구소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실패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
과정적 실패 발굴의 어려움
실패의 수많은 의미
3장 새로운 도전을 방해하는 진짜 문제
도전 권하는 사회, 실패에 주목하는 이유
카이스트 학생들의 속사정
모두가 실패했다고 느끼는데 실패가 부족하다고?
실패하지 않고도 실패감을 느끼는 사람들
4장 실패의 발견
실패와 포토보이스의 만남
이것은 실패가 아니란 말인가?
실패는 객관적 사실인가 주관적 판단인가
불쑥불쑥 찾아오는 현실 자각 타임
실패의 두려움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5장 실패에서 배운다는 것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의 진짜 의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찾아낸 ‘실패에서 배우기’
실패에서 더 잘 배우기 위하여
맺음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감사의 말
부록: 실패연구소 소장의 메시지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