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유호준
매년 10월만 되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 집 앞에 기자들이 모여 있다가, 발표 소식을 듣고는 허탈하게 뒤돌아서는 풍경이다. 이때만큼은 잠시 ‘번역’에 대한 주제가 화두로 오르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슈는 금방 잠잠해지고 건설적인 비판들은 무로 돌아간다. 이렇듯 평소에는 언급도 없다가 해외의 문학상 소식이 들려야만 잠깐 조명 받는 번역가 14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어떤 번역가는 본인이 작업했던 작품들을 예시로 들며 번역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 하고, 또 다른 번역가는 본인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명을 가지고 번역 작업을 하는지에 대해 토로한다. 그리고 번역의 문제에 대해 심도가 깊은 담론을 펼치는 번역가도 있다. 14명의 글이 기고된 만큼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역시 가장 사람들이 궁금해 할 부분은 아마도 한국문학 번역의 과제와 미래를 담은 부분일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문학 번역의 성공을 위한 과정은 참으로 험난해 보인다. 해외와 비교하여 번역할 작품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여(제대로 된 번역을 위해선 해당 작품의 완전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견에서 비롯함), 의역과 오역에 지나치게 엄격한 사회 풍조, 우리나라의 정서를 담은 주제가 외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이는 작가, 번역가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한국문학의 해외 전망을 k-문화에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k-문학도 어찌 보면 K-문화의 한 갈래를 다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음악, 드라마, 영화, 음식 등 전 세계가 K-열풍인데 비해 문학은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하지만, 성과가 없다고는 할 순 없다. 맨 아시아 문학상(신경숙-엄마를 부탁해)을 시작으로 맨부커상(한강-채식주의자), 대거상(윤고은-밤의여행자)을 수상하는가 하면 한국 문학이 각종 해외 추천 도서 목록에 오르는 등의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번역 시도조차 하지 않던 과거 20년 전에 비하면 분명 엄청난 발전이라고 한다. 빠르게 생성되고 소비되는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문학 특성상 천천히 스며들 듯, 해외에서 입지를 굳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번역은 필연적으로 원문과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이는 반역이라 표현될 정도로 번역가에게 막중한 책임이 주어 진다는 뜻이다. 본격적으로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기를 위해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된 지 이제 23년이 지났다.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으며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읽다 보면 번역가들의 통찰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추가로, 영어로 기고된 글의 경우 영어 원본과 한국어 번역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책의 분량은 2/3 수준이니 책의 두께에 비해 독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만약 영어에 자신 있다면 원본도 함께 읽어보며 번역가들의 번역 스타일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법이 될 것이다. 필자처럼 한국문학이 왜 해외에서는 먹히지 않는지와, 번역론의 발전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며 이 책을 마친다.
“결과물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번역자는 원작자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기 쉽지 않으며, 간혹
오역이라도 있으면 번역가는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도 번역가는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한국문학 번역가들의 숨은 노고로 지금의 ‘K 문학’이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14
♣ 저자 소개 (저자: 조의연, 이상빈, 조의연, 이상빈, 제이미 장, 로렌 알빈, 배수현, 브루스 풀턴, 정은귀, 리지 뷸러, 전미세리, 안선재, 전승희, 제이크 레빈, 이형진, 신지선 지음)
조의연 :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미국 인디애나대(블르밍톤)와 일리노이대(어바나-샴페인)에서 언어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화용론이며, 한국 담화-인지 언어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추론 화용론에 기반해 언어 및 번역 현상을 연구해왔다. 공동 저서로 《번역학, 무엇을 연구하는가》와 《번역문체론》이 있다.
이상빈 : 한국외대 영어대학 EICC학과 교수.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통번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국대 영어통번역학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국내외 학술저널에 7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했다. 2016년 중앙일보
제이미 장 : 번역가,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강사,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강사. 터프츠대 영문학 학사, 하버드대 동아시아 지역학 석사를 거쳐 서울대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08년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시작으로,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조남주의 『사하맨션』『82년생 김지영』, 박수용의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등을 번역했다. 슬하에 갈색 푸들 한 마리를 두고 있으며, 아내와 강원도에 산다.
로렌 알빈 : 번역가, 영 해리스 칼리지 웨인 롤린스 천문투영관 책임자. 애리조나주립대에서 MFA를 받았다. 김혜순의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 공동 번역에 참여했으며, 나희덕의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를 번역했다.
배수현 : 시인, 번역가. 애리조나주립대에서 MFA를 받았고, 동 대학에서 비교문화 및 언어프로그램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시집 《Truce Country》를 썼고, 김혜순의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 공동 번역에 참여했으며, 하재연의 시집 《라디오 데이즈》, 최정례의 시집 《빛그물》을 번역했다.
브루스 풀턴 : 번역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아시아학과 한국문학 및 통번역학과 교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배우자 주찬 풀턴과 함께 한국문학 작품을 다수 번역해서 영미권에 소개해왔다. 권영민과 함께 《What Is Korean Literature?》를 썼고, 《The Penguin Book of Korean Short Stories》를 엮어 출판했다. 최근 번역작으로는 천운영의 《생강》, 김숨의 《한 명》, 공지영의 《도가니》 등이 있다.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했다.
정은귀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산문 작가, 번역가. 시를 통과한 느낌과 사유를 나누기 위해 매일 쓰고 매일 걷는다. 때로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것과 시가 그 말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공부 길을 걷는 중이다. 산문집 『딸기 따러 가자』(2022), 『바람이 부는시간』(2019)이 있고, 우리 시를 영어로 옮겨 알리고 영미시를 우리말로 옮겨 알리는 일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기념비적인 여성 시인 앤 섹스턴의 『밤엔 더용감하지』, 의사-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패터슨』, 『꽃의 연약함이 공간을 관통한다』, 아름다운 영시를 구사한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고블린 도깨비 시장』,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 『신실하고 고결한 밤』, 『아베르노』 등을 번역했고,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초(Fifteen Seconds Without Sorrow)』, 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Ah, Mouthless Things)』, 강은교의 『바리 연가집(Bari’s Love Song)』,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 시인 44명의 시를 모은 『The Colorsof Dawn: Twentieth Century Korean Poetry』를 영어로 출간했다. 힘들고 고적한 삶의 길에서 시가 나침반이 되고 벗이 되고 힘이 되기를 바란다.
리지 뷸러 : 번역가, 하버드대 박사과정. 프린스턴대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아이오와대에서 문학 번역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을 번역해 영국 추리작가협회 대거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윤고은의 《1인용 식탁》,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를 번역했다. 《Asymptote》《Azalea Magazine》《Litro》《The Massachusetts Review》 등에 글을 기고했으며, 현재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거주하며 첫 소설을 쓰고 있다.
전미세리 :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한 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학, 아시아학과 문학 석사, 동 대학 비교문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0년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대학원생 장학금을, 박사과정 완료 후 캐나다 연방정부의 SSHRC 연구비를 받았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아시아학부에서 강사로 일했고, UBC 아시아 도서관에서 참고 사서로 일했다. 오정희의 단편 「직녀」, 서수진의 『골드러시 Gold Rush』 등을 번역했다.
안선재 : 1942년 영국에서 태어나 1969년 프랑스 떼제공동체 수사가 되었다. 1980년 5월, 故김수환 추기경의 초대로 첫 방문한 이후로 한국에서 살고 있다. 198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2007년 이후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10년 이후에는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2011년부터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4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며 2008년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40권 이상 김지하, 고은, 천상병, 김수영, 정호승 등 한국 작가들의 시집과 소설 영문 번역서를 펴냈다.1942년 영국에서 태어나 1969년 프랑스 떼제공동체 수사가 되었다. 1980년 5월, 故김수환 추기경의 초대로 첫 방문한 이후로 한국에서 살고 있다. 1985년부터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2007년 이후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10년 이후에는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2011년부터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4년에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며 2008년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40권 이상 김지하, 고은, 천상병, 김수영, 정호승 등 한국 작가들의 시집과 소설 영문 번역서를 펴냈다.
전승희 :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보스턴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문예계간지 [ASIA]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권여선, 은희경, 한강, 황정은 등 다수의 한국문학 작품을 영어로 소개해 왔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설득』, 『오만과 편견』, 『그레이트존스 거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도심의 절간』,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이야기』와 앨런 홀링허스트의 부커상 수상작 『아름다움의 선』, 샤힌 아크타르의 아시아문학상 수상작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이 있다.
제이크 레빈 : 시인, 번역가,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수년간 스포크 출판사에서 시를 편집했고, 《Sonoran Review》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블랙 오션 출판사에서 “Moon Country Korean Poetry Series”를 선별 및 편집하고 있다.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를 공동 번역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그 외에도 12권 이상의 책을 쓰거나 번역(혹은 공동 번역)했다. 또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번역했다.
이형진 : 숙명여대 영문학부 번역학 교수. 미국 뉴욕주립대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비교문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비교문학회 회장과 한국번역학회 부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번역원 영어권위원장을 역임했다. 고형렬의 시선집 《Grasshoppers’ Eyes》, 김승희의 시선집 《Walking on a Washing Line》, 이강백의 희곡집 《Allegory of Survival》 등을 공동 번역했고, 《다문화주의 시대의 비교문학》《문학번역의 세계》 등을 번역했다.
신지선 :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 부교수, 이화여대 통번역연구소 소장.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몬테레이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세종대에서 번역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공저서로는 《통번역학 연구 현황과 향후 전망》《번역학, 무엇을 연구하는가》《국가 번역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초 연구》 등이 있고, 공역서 《Understanding Contemporary Korean Culture》는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 목차
프롤로그
1. 역작의 탄생
김지영의 일생과 나의 일생_제이미 장
우리 나름의 김혜순_로렌 알빈·배수현
모든 번역은 중요하다_브루스 풀턴
2. 번역은 반역이다
시 번역과 창조성_정은귀
재활용 행위로서의 번역_리지 뷸러
기계 번역이 인간 번역을 대신하게 될까?_전 미세리
3. 한국문학 번역의 역사와 과제
번역 속의 한국문학_안선재 수사
한국문학 번역가의 책무_전승희
국내 번역학 연구의 과제_이상빈
4. 한국문학과 K 문학
K 콘텐츠 노동자로서의 K 번역가_제이크 레빈
한류를 통해 바라본 한국문학 번역의 미래_이형진
한국문학번역원의 20년을 돌아보며_신지선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