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신 유 림
우리는 멋진 풍경을 보면,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표현한다. 분명 풍경이 그림보다 세상에 먼저 있었고, 더 큰 범주인데도 불구하고. 반대로 강요배 작가의 그림을 보면, 제주도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강요배 작가를 알지 못했다. 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풍경의 깊이’를 읽어 보았다. 읽을 수 있는 글과, 볼 수 있는 그림이 있어 ‘예술 산문’이라는 부제가 옆에 적혀있다. 말 그대로 읽고 볼 수 있는 책.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다, 상경후 20년간의 육지생활을 마치고 귀향한 작가. 어릴 적 청각장애를 앓던 동네 형이 매번 ‘으어어’하며 제대로 된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느 날은 신난 표정으로 흙바닥에 앉아 나뭇가지로 물고기를 그리며 있었던 일을 설명 했고, 너무나도 선명한 전달력을 가진 그림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날부터 계속 꾸준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노년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강력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타지에서 고향이 그리워 힘들 때도 있지만, 살아가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강요배라는 이름은, 제주도에서 4.3사건으로 흉흉할 때, 명단의 이름만 같아도 잡아가서 학살했기 때문에 그의 부모님이 최대한 특이하게 지어준 것이다. 이름에서부터 제주도의 역사와 함께한 작가는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주 4.3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현기영의 소설「바람 타는 섬」에 제주 섬의 일제 강점기 항일 운동을 주제로 삽화로 그린다. 이 후 귀향하여 제주4.3연구소와의 협업을 시작한다. 그 그림의 깊이가 종이를 뚫고 전해진다. 책에 싣린 그림일 뿐인데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냥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의 어두웠던 면을 그림을 통해 빛날 수 있구나. 예술가의 몫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구나. 하며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강요배의 그림은 깊이가 있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글 솜씨도 좋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보고 읽었으면 한다.
♣ 저자 소개(강요배 글, 그림)
화가. 제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미술 대학을 졸업했다.
미술 동인 ‘현실과 발언’(1981)에 참여했고,〈제주 민중 항쟁사〉 연작으로 개인전(1992)을 열었다.
이후 제주로 귀향하여, 제주의 자연과 이를 빌려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제주의 자연〉(1994), 〈상象을 찾아서〉(2018) 등 2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15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화집 『동백꽃 지다』(1992, 1998, 2008)를 펴냈다.
♣ 목차
1 나무가 되는 바람
마음의 풍경 20 ― 제주, 유채꽃 향기 날리는 산자락 28 ― 바람 부는 대지에서 32 ― ‘서흘개’와 ‘드른돌’ 38 ― 가슴속에 부는 바람 44 ― 폭락 54 ― 산꽃 자태 56 ― 그림의 길 74 ― 그림의 방식 90
2 동백꽃 지다
시간 속에서 128 ― 4·3을 그리며 136 ― 4·3 순례기 142 ― 현장 연구원들의 겸허한 마음 150 ― 탐라 177 ― 한라산은 보고 있다 184 ― 금강산을 그리며 192 ― 봉래와 금강 197 ― 휴전선 답사기 207 ― 풀과 흙모래의 길 214 ― 몽골의 푸른 초원 219
3 흘러가네
죽음에의 향수 228 ― 각角 234 ― 용태 형 238 ― 마부 240 ― 돈, 정신, 미술품 244 ― 미술의 성공과 실패 253 ― 창작과 검증 272 ― 어려운 날의 미술 283 ― 공재 윤두서 선생 측면 상 292 ― 예술이란 무엇인가 294 ― 무엇을 할 것인가 296 ― 제주 굿의 시각 이미지 300 ― ‘그림’이란 무엇인가 310 ― 사물을 보는 법 316
강요배와의 대화 바람에 부서지는 뼈들의 파도 노순택 326
『풍경의 깊이』에 부쳐 시간 속을 부는 바람 정지창 364
후기 서쪽 언덕에서 372
도판 목록 375
출처 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