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 주 용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들과의 만남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어색한 공기 사이,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상대방의 종교 색채를 드러내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이 앞서 말한 룰이다. 과거와 달리 한국인들의 선량함을 이용한 다양한 포교 방법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길을 걷다 누군가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팔을 붙잡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탓에,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는 종교의 ‘종’자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사실 교리의 문제라기보다는 ‘방식’의 차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순간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순리와도 같다. 이 같은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오늘의 약속은 아름답게 끝날 수 있으므로 종교 이야기는 보통 묻어두곤 했다. 앞서 설명한 사유로 인해 친한 친구들끼리 종교 대통합은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를 해내신 분이 있다는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종교 간의 대화 위원장을 맡은 성진 스님이 쓰신 책, <내 걱정 어디서 왔을까>와 관련한 이야기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내가 저들의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공부가 굉장히 많이 되지 않고서는 섣불리 만나지 말아야겠다 싶었죠. 그러다 깨달은 건 이와 관계없이 그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역할은 이들과 별 관계없이도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 <연,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中>

제목처럼 이 책은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걱정에 스님만의 답안지를 작성해두고, 읽는 이가 방향성을 잡을 수 있도록 키 역할을 한다. 스님이 명쾌한 답을 준 것도 아니거니와, 부딪힌 문제에 당사자가 문제를 해결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로 책은 가야 할 목적지만 제공해준 셈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장에서는 19개 항목의 화두로 가족과 친구와 관련한 고민에 대해 가장 중요한 ‘나’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2장에서는 ‘행복의 조건’을 불교적 관점에서 하나씩 설명한다. 3장은 ‘오답’인 줄 알았는데 ‘정답’이었던 대인 관계에 자그마한 디딤돌을 제공하며 4장은 저자가 유튜브 <사피엔스 스튜디오>의 ‘마음 읽어드립니다’에서 홍창진 신부님과 함께 종교 간 에피소드에 관해 이야기했던 내용을 갈무리해 담아두었다. 마지막 부록에서까지 스님은 답변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개인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정성스레 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만이 아닌, 동화를 잃어버리고 사는 어른들에게도 인류는 근본적으로 선한 기운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는 메시지가 전해지길 바랍니다. 불교 설화에 녹아든 메시지는 천 년 전, 이천 년 전에 만들어져 모양새는 조금씩 변해도 지금까지 계속 구전된다는 건 특정 종교를 떠나서 그것이 우리 삶의 나침반인 게 아닐까요. - <불교로 동화 읽기 中>

스님은 “자신과 만났던 이들이 지금도 불교를 믿는지는 모르지만,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면서 “그저 힘든 시절에 좋은 추억을 남겨주는 데 불교가 보탬이 됐다면 그대로 가치 있는 일인 만큼 여러분에게도 부디 몸과 마음을 쉴 장소를 마련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1)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진로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 연결된 스승에게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고, 불현듯 눈물 흘리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출가한 지 30년 차의 승려 성진. 그가 지금은 답을 찾는 길에서 만난 또 다른 종교 성직자분들과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종교 간 벽을 허무는 노력을 하며 이 과정에서 종교의 색채는 옅게, 인생의 진리는 깊게 담아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다양한 시도가 통한 탓일까. 성진 스님과 관련한 다양한 업적을 찾던 도중 ‘신과 함께’라는 주제로 유퀴즈에서 종교 대통합을 기획한 적이 있음을 알게 됐다. 한국 사회는 특이하리만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나라인데,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만의 종교를 강조하기보다 종교끼리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이 종교들이 다양한 가치들을 세워 삶의 ‘커닝 페이퍼’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스님의 책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함께 소개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 할 걱정과 고민의 출처는 어디인 걸까. 이로 인한 고통과 슬픔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온 건지는 쉽게 알 수 없다. 감정의 해소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감정의 원인을 먼저 찾아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찾는 것이 곧 걱정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자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내가 겪는 걱정과 이로부터 비롯된 인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자그마한 위안을 얻기를 바라며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