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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주름들
예술의 주름들
  • 저자 : 나희덕 지음
  • 출판사 : 마음산책
  • 발행연도 : 2021년
  • 페이지수 : p
  • 청구기호 : 600.04-ㄴ45ㅇ
  • ISBN : 9788960906723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 주 용

 

어렸을 적 교과서에 실렸던 나희덕 시인의 작품이 생각난다. ‘배추의 마음이라는 시다.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 보다 /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 하도 자라지 않아 /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후략)

 

라는 연으로 시작해 끝을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로 맺는 시를, 책 앞에 적힌 나희덕이라는 집필자를 보자마자 기억해 냈다. 배추를 그려내는 아름다운 단어들과 알맞은 연결성이 마음에 담기기도 전에, 이 시를 접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모든 구절을 분석하고, 화자의 마음을 독백체라고 이해하며, 자연과 교감하려는 물아일체의 교훈을 주는 문학작품으로 배워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제하고 온전히 시어를 느끼고자 읽었을 때 시가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라 의아했었다. 배추 풀물을 사람 소매에도 적시는 이 시인의 예술적 통찰력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다양한 저서들을 찾아왔지만, 아쉽게도 시인의 다른 저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남은 삶을 시를 쓰며 살아갈 것이라는 시인이, 공연과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의 옆모습들을 관람하고 다가온 울림들을 기록한 책을 발견해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예술의 주름들>이다.

 

이 책은 나희덕 시인이 편애하는 서른 개의 예술을 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비평적 관점으로 써 내려간 글을 묶어낸 산문집이다. , 음악, 영화와 더불어 예술 작품과 예술가들을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시인의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특이한 것은 예술의 깊이를 주름이라고 명명하여 그 깊이를 시인의 탐사기록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통해 한설희 작가의 엄마, 사라지지 마까지 연결하며 오랜 시간을 견뎌낸 어머니라는 작품의 무늬와 질감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윤형근 화백의 그림을 통해 805월 광주를 떠올리게 하는 울분과 격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예술 작품에서 시상을 얻어 저자의 시로 느낀 바를 표현해내기도 했다. 장민숙 화가의 <산책>이 나희덕 시인의 <창문성>으로 풀어져 누군가의 함축적 풍경을 그려내는 작품으로 변화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공감되었던 부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사진의 초기 목적을 기억하고자, 사람의 얼굴보다 음식이나 풍경 등에 포커스가 맞춰진 현재의 사진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였다.

 

사진의 제의적 가치가 남아 있던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 기술 복제 시대에 사진의 아우라가 사라진 것은 사람의 모습이 뒤로 물러나고 전시적 가치가 강해지면서부터라는 것. 벤야민의 이 예리한 통찰이 새삼 놀랍다. (중략) 지금도, 아주 드물게, 누군가는 어디선가 셔터를 누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 “멜랑콜리하고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향해(p. 132).

 

책 한 권으로 모든 예술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의 예술 작품 안에 한 작가의 일생이 담긴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더불어 예술을 마주하는 나희덕 시인의 관점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닐까 싶었다. 예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했던 타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 그 주름들까지 살펴보는 과정이 포함이라면 예술의 탐사기는 끝맺음을 쉽게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 작품의 주름을,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를, 나아가 타인의 삶을 나의 관점으로 살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저자 소개 (저자: 나희덕)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등이 있다. 또한 시론집으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등과 편저로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유리병 편지등이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 시와 예술 사이의 작은 길

 

1 찢긴 대지를 꿰매다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에요 · 아녜스 바르다

행성과 거미 · 토마스 사라세노

맞아, 바로 이 소리야! · 류이치 사카모토

걷기, 찢긴 곳을 꿰매는 바느질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이 대지는 누구의 것인가 · 황윤

한 사람이 여기 있다 · 정영창

 

2 , 스스로의 뮤즈가 되어

나는 나를 낳을 거야 ·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

말과 나는 같은 삶을 사네 · 마리 로랑생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 케테 콜비츠

허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거미처럼 · 시오타 치하루

인어에게서 배운 노래 · 클라우디아 요사

사라진, 또는 사라져가는 얼굴을 위하여 · 한설희

 

3 이것이 그의 자화상이다

악마, 진실의 다른 얼굴 · 고야

조각가와 모델들 · 자코메티

음악 속으로, 한 개의 점이 되어 · 글렌 굴드

목소리로서의 회화 · 마크 로스코

흙빛의 시 · 윤형근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 김인경

 

4 경계 없는 창조자들

예술과 체스 · 뒤샹

손을 그리는 손을 그리는 손 · M.C. 에셔

색채와 음색 · 칸딘스키

사건으로서의 연극 · 우스터 그룹

매화와 붓꽃, 그 너머의 세계 · 김용준과 존 버거

의자는 자명하지 않다 · 목수 김씨

 

5 시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도착한다

잃어버린, 또는 아직 오지 않은 시 · 짐 자무시

화가의 시사용법 · 데이비드 호크니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새가 되어 날아간 대기의 감별사 · 조동진

산책자의 고독과 풍경의 진화 · 장민숙

아주 오래된 말의 지층 · 이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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