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 닮은 구석이 없을 것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수백 년 전의 예술품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은 예술이라는 영역 안에서 작가의 창작으로만 가능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의 작품을 오늘날의 우리가 만나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작품 자체를 탄생시킨 작가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한 사람들의 손길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살아있는 생명뿐만 아니라 자연이나 심지어 물건들도 세월의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미술 작품도 예외일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철학과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 시간이라는 세월의 흔적에 덧대여진다면,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보존가, 보존과학자들의 역할로 작품을 처음과 가장 가깝게 되돌리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이다.

저자는 미술관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림을 더 잘 보존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고, 실제로 복원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보존 과학에 대해 전문가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술 복원에 대해 알게 되면 우리가 오늘 눈앞에서 보고 있는 예술 작품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술 작품을 어떻게 다루어야 앞으로 더 오랜 시간을 보존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할 수도 있다며 말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보존과학의 세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 '그림이 들려주는 복원 이야기'에서는 복원의 역사에서부터 복원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보존가의 이야기가, 두 번째는 '미술관으로 간 과학자'를 주제로 실제 미술품 복원에서 과학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들려주고 끝으로 '미술관의 비밀'이라는 제목 아래 미술품을 안전하게 보존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미술관의 노력, 새로운 시도 등에 대해 풀어낸다.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책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책 속 곳곳에 배치된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와 작품에 관련한 에피소드, 해석까지 함께 할 수 있다. 다소 전문적이고 딱딱한 과학 이론일 수 있지만 전문가인 저자의 과학적인 설명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곁들여져 예술과 과학을 넘나들며 읽는 재미를 가질 수 있다.

작가는 말한다. 미술작품의 생명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긴 생명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손길로 지켜진다고.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더불어 아픈 그림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의 이야기도 함께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