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박주용
이상했다. 책의 삼분지 일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이게 뭐지?’였다. 황혼 녘을 그려낸 아름다운 표지와 번역가 백수린. 그리고 첫 문장 ‘책, 아버지는 그것을 교외선 기차에서 주워오곤 했다.’에 매료되었던 첫 느낌과는 확연히 달라서 읽기를 주저했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주제는 난해했고, 가끔 튀어나오는 희곡 문체는 독서를 방해했다. 또한 대사가 거듭될수록 변화하는 주인공들의 심리는 난잡했고, 현시점에선 절대로 불가능한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의 시너지가 후반부에도 등장하지 않는다면, 추천 도서 선택을 번복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 책은 연인 L’amant 이라는 소설의 저작자로 우리에게 익숙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이다. 책은 절판되었다가 애서가들의 요청과 저명한 번역가의 뛰어난 문체로 다시금 발간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이 책에는 무언가 결핍된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방인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트리 시로 이사 오고 나서 실업급여를 받으며 사는 무능력자였고, 산하 일곱 아이는 교육도 받지 못해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날마다 이웃집 지하실에서 숨어지내는 형편이었다. 창고 같던 지하실에서 불탄 책을 발견하게 된 (첫 아이가 죽은 후 첫째가 된) 에르네스토는 문자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탄 책을 읽어 내며 극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시대의 프랑스 작가들은 사회 고발적인 문제를 책 속에 녹여내기를 원했고, 글로 이를 발화시킬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규교육은 모두가 받아야 하는가에 관한 심도 높은 주제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천재성을 발휘하는 순수한 에르네스토에 의해 정면으로 부정당한다. 가난한 도시의 가난한 가족 속에서도 첫째는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로 충족시켜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아쉽게도 모든 등장인물이 결여를 메우진 못한다. 이 점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한국 사회에서의 정규교육은 절대적인 것으로 취급되지만, 책 속 아홉 명의 이방인들 같은 다문화가정에는 그렇지 않다. 가난한 가정 형편 탓에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은 적어도 2,000명이라고 어느 신문 기사1)에서는 밝히고 있다. 이들의 결락된 부분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부터 고쳐낸 후 충족시킬 수 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며 추천 도서 선정은 번복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하는 이 책은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읽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평이 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해체를 막고자 그 무엇도 가르치려 하지 않았던 아버지. 현명하고 아름다웠지만, 아이들을 버리고 싶어 했던 어머니.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었던 첫째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원했던 둘째. 그리고 버려질까 두려워했던 남은 다섯 아이와 이 가족을 이해하고 지지했던 교사까지. 책의 제목 ‘여름비’의 의미와 이에 걸맞은 독특한 결말 또한 궁금하다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 전체를 두세 번 곱씹어보기를 권해본다.
1) 김원진, <출생신고 안된 아동 적어도 2000명>, 인천일보, (2019.6.28.) (최종 확인일: 2021.4.15.)
♣ 저자 소개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1914년 베트남 지아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3년 프랑스로 귀국해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1943년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첫 소설 『철면피들 Les Impudents』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누보로망’ 작가로 불리며, 영화 시나리오 작업 및 연출로도 주목받았다. 1984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대표작 『연인 L’amant』을 비롯해, 1995년 발표한 『이게 다예요 C’estTout』에 이르기까지 마흔여 권의 작품을 남기고 1996년 세상을 떠났다.
♣ 목차
- 여름비
- 작가의 말
-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