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정찬종

※인문학: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출처: 교육학 용어사전).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급속한 디지털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을 AI와 첨단기술이 대체 할 수 있는 시대가 점차 도래하고 있다. 이미 마트나 생활용품점, 패스트푸드점에서 소비자 본인이 주문, 계산하는 무인결제시스템은 우리 생활에 녹아들었다. 이렇게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그 중요성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기계가 대신 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에 대한 중요성 또한 점차 커진다. 여기서 바로 인문학이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인문학에 관한 글과 삽화를 게재하는 저자 권기복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민하면 좋을 주제와 이론을 정리하여 ‘한 컷의 인문학’으로 소개했다. 책을 펼쳐보면 1장부터 5장에 걸쳐 사랑·돈·계급·자유 등 여러 분야에 관련된,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가의 사상과 인문학적 지식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하지만 ‘한 컷의 인문학’ 표지를 펼치면 선글라스를 쓴 마르크스가 다리를 꼬고 편하게 앉아 계급과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홉스와 로크, 루소가 한자리에서 ‘자연 상태’ 시뮬레이션을 하는 등 저자의 설명과 일러스트가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켜 각 주제의 내용이 어렵지 않게, 한 컷으로 눈에 들어온다.

책장을 넘겨보면 알겠지만 소화가 잘되게끔 거대한 지식을 잘게 썰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고명처럼 관련 그림을 그려 넣었다. 글에 대한 부연설명일 수도 알레고리일 수도 있다. 글에 그림을 곁들여 삼켜보자. 목 넘김이 한결 부드러워 다음 문단으로 나아가기가 수월할 것이다. 서문 6p

“이 책을 통해 우리 안에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가 발생하길 바란다.” 서문에 밝힌 저자의 말처럼 인문학을 접하고 인문학적 사유가 발생하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일상 속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해서 일을 한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고 밥을 먹고 TV를 보다가 잠이 든다. 별다른 것 없는 이 일상에 자유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마르크스와 자본, 수많은 사상가의 치열한 사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 대한 인기와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의 높은 수요가 지식과 인문학에 대해 높아지는 관심을 방증한다. 하지만 원체 어려워 보이는 주제라 선뜻 접할 용기가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쯤 인문학을 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첫 인문학 도서로 이 책을 권한다. ‘한 컷의 인문학’을 통해 편하고 어렵지 않게 내 삶 속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가질 수 있길 바란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사랑이 점점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굳이 사랑을 해야만 할까? 사랑을 하지 않아도 혹은 가볍게 즐기는 관계만 맺어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많은 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사랑을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탈마법화가 이루어진 현대에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는 지금보다 더 건조할 것이고, 인생은 더욱 허무해질 것이다. 본문 5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