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이 정
한 젊은 여성이 실종되었다. 조앤 넬슨이 사라진 것은 2005년 밸런타인데이. 저자가 경찰로부터 수색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그녀가 행방불명된 지 열하루가 지난 뒤였다. 조앤은 11일 전 연인의 손에 목이 졸려 사망했다. 한동안 조앤의 남자친구 다이슨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범인은 잡혔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시체를 찾지 못한 것이다. 조앤을 살해한 날 밤, 그는 사체를 비닐로 싼 다음 차에 실어 최대한 멀리까지 나가 시체를 버렸고, 사건 발생 일주일 뒤 다이슨은 그곳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저자에게 제공된 증거품은 범인의 청바지와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 리복 운동화 한 켤레, 다이슨 부모의 집에서 발견된 정원용 갈퀴 하나였다. 그녀는 증거품에서 얻은 꽃가루, 포자, 미세입자를 주의 깊게 조사하여 사체가 묻혀있는 공간을 생생하게 표현하였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식물 생태에 관한 지식과 그에 다른 지질학적 특성을 통해 사체가 있는 장소를 알아냈다. 나중에 경찰이 조앤의 사체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그녀가 한 묘사의 정확성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사체는 그녀가 말한 대로 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경사면에 있었고, 자작나무 아래 움푹 파인 구덩이 속에 놓여 잔가지로 덮인 채였다.
‘법의생태학자’는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 세계의 한 측면을 해석해 형사들을 돕는다.
흔히들 범죄 현장에서 채취하는 것은 지문이나 머리카락, 혈액, 정액 같은 DNA 증거라고 생각하지만, ‘법의생태학자’가 찾는 것은 꽃가루와 포자다. 저자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꽃가루를 채취해 표본을 만들고 피의자의 옷과 차량 등에서 찾아낸 꽃가루를 분석해 그 사람이 현장에 있었는지를 밝혀낸다. 반대로 범죄자에게서 얻은 꽃가루를 단서로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살인사건 뿐 아니라 진술 입증이 상당히 어려운 강간 사건에도 유용한 단서를 제공한다. 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법의학의 선구자인 에드몽 로카르가 남긴 격언 –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처럼 저자는 “우리가 환경에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환경 또한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고 말한다. 얼핏 똑같아 보이는 자연 풍경도 지표면의 토양에서 표본을 채취해 보면 불과 한 발짝 차이에도 전혀 다른 표본이 추출된다고 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은 늘 경이로움의 대상일수 밖에 없다.
교수로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 우연히 범죄 수사의 세계로 뛰어들어 마침내 ‘법의학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 한 여성의 다이내믹한 인생 여정을 통해 범죄미드를 보는 것 같은, 소설보다 더 놀라운 세계를 접해보는 경험을 누려보자.
♣ 저자 소개 (저자: 퍼트리샤 윌트셔)
영국의 식물학자, 화분학자이자 고고학자. 무엇보다 지난 25년간 300건 이상의 까다로운 범죄 사건을 해결해온, 법의생태학의 선구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
유년 시절 기관지염과 폐렴을 앓아 병약했던 그녀는 주로 백과사전 전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때 접한 지식들은 어린 그녀가 세상을 폭넓은 시선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대하게 이끌어주었다. 의학 연구실과 건축 회사를 거쳐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식물학을 공부한 그녀는 미생물과 일반생태학을 강의하다 런던대학교 고고학연구소에 부임, 환경고고학자로서 영국 전역을 누비며 과거의 환경을 재구성하는 일을 했다. 어느 범죄 사건의 증거 분석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녀는 살인, 강간, 납치, 은닉 등의 다양한 강력 사건에 수십 년간 쌓아온 과학 전문 지식을 동원, 현장의 이미지를 명징하게 그려내고 무고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며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는 데 기여해왔다.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놀라운 정확성과 호기심, 겸손, 그리고 진실에 대한 열정 덕에 이제는 '법의학의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현재 영국 동남부 지역인 서리(Surrey)에 거주하며, 세계법의학협회· 영국왕립생물학협회 ·린네협회 회원으로서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연구와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목차
01. 몰래 스며든 흔적
02. 실종된 희생자
03. 어느 날 갑자기
04. 할머니의 정원
05. 장미와 라임나무의 증언
06.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
07. 머리카락 속에 잠든 진실
08. 죽음 속의 아름다움
09. 아주 작은 실마리
10. 마지막 숨결
11. 텅 빈 그릇
12. 치명적인 탐닉
13. 중립
14. 나와 당신의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