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김태진
“나는 마지막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예상대로 일이 흘러갔다면 나는 지금쯤 산속 저수지에 캐리어를 던지고 있을 것이다. 자갈을 잔뜩 끌어안은 남자는 영원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고, 나는 핏물로 부패한 저수지 앞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뒤돌아섰을 것이다. 그 길로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써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어야 했다.” p.17
고층빌딩들은 현란한 불빛을 내뿜고 고가도로에는 차들이 정체되어 있으며 거리는 인파로 북적인다. 겉으로는 그저 화려함만 가득해 보이는 하나시의 모습이지만 불황 속에서 무수한 삶이 무너져내리기도 했다.
주인공은 ‘재’라는 인물로부터 지령을 받아 표적을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주인공이 재의 심부름을 하는 이유는 ‘0’ 이라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재는 주인공의 나이 열 세살 때 파란색 잉크로 적힌 숫자를 보여주었다. 그 숫자는 바로 주인공의 아버지가 갚지 못한 빚이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도 잃어버린 채 빚을 갚아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재의 용역이 되어 지령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버려진 땅, B구역에까지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B구역은 수년 전 화학공장들이 화재로 폭발한 이후 폐쇄된 재난구역으로 그곳에서는 온갖 독성물질에 감염된 사람들이 식인귀가 되었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었다.
화려한 도시, 하나시와 그 경계에 위치한 버려진 땅 B구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사채업자와 살인청부, 복수의 소재가 다소 잔혹하고 비극적인 느낌을 주지만 흡입력 있는 전개로 인해 읽는 도중에 쉬이 책장을 덮을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 목차
봄비 · 9
세뇌 · 20
틈새 · 38
허공 · 79
야경 · 104
거울 · 147
계단 · 165
베일 · 181
작가의 말 ·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