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류작가 하면 제일먼저 ‘박완서’가 떠오른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작가로 활동했는데 그 내용은 닮은 구석이 있지만, 확연히 다르다. 여자가 주로 주인공이고 녹록치 않은 세월을 보내는 등의 스토리는 비슷하나, 강신재의 소설은 현재 쓰여 졌다고 해도 납득이 갈 다소 파격적인 불륜을 다룬 애정소설도 이 많이 있다. 민음사에서는 작가의 단편소설 중에서 4편을 골라 ‘해방촌 가는 길’이라는 소설집으로 묶어 발행했다.
전부 여자의 사랑이 주제 이지만, 그 당시(1940-1980년대)에 사회로부터 강요받던 지고지순한 여성의 애절한 모습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소설을 보며, 그 시대의 여성들도 사랑에 대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남자가 원하면, 여자가 원하지 않아도 무조건 따라서 결혼은 해야 한다거나, 여자는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던지 여자에게 강요 되던 사회분위기 속에서, 의문을 갖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여성이 실제로도 있었을 것이다. 약간의 반기를 들고자하여 이와 같은 소설을 쓴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미국군인과 사랑을 나누며 동거하는 기애, 이복남매의 사랑, 아름다운 젊은 커플의 죽음, 여자약사와 마약중독자 남자 부부에 대한 이야기 등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남녀에 대한 소설을 보며 굉장히 우울한 내용으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오는 흐린 날 같았다. 흑백영화에서 보는 남녀의 대사가 음성지원되는 느낌을 받으며 소설을 읽었다. 1960년대 감성이 느껴지는, 혹은 기억에 남았던 네 개의 문장을 발췌해 보았다. 아래의 대사를 가만히 눈을 감고 읊조리면 그 당시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엄마의 아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그래? 그거 야단이로군”
“명순인 지금 행복할까? 정직히 말해서...”
♣ 저자 소개(강신재)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1949년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얼굴」, 「정순이」를 「문예」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59년 단편 소설 「절벽」으로 한국문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젊은 느티나무』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불륜을 그린 수많은 애정소설을 발표하여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67년 장편 소설 『이 찬란한 슬픔을』로 여류문학상을 받았고, 1984년에는 장편 소설 『사도세자빈』으로 중앙문화대상, 1988년에는 같은 작품으로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작품경향은 '임진강의 민들레'(1962), '파도'(1963)에 이르면 사회와 현실문제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주로 여성들의 운명적 불행과 비극적 삶을 형상화하였는데, 다양한 형태의 비극을 역설적인 아름다움과 연결시키고 있다. 주제의 다변화, 상징성, 감각적인 문체의 사용 등으로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소설은 주로 불륜과 삼각관계 등 사회적인 인습을 뛰어넘는 애정관계를 통해 사랑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녀의 심리를 감각적이고 신선한 문체로 표현하여 대중소설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으로 『명성황후』(전3권), 『젊은 느티나무』등이 있으며, 한국문학가 협회상, 제3회 여류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예술원상 , 삼일문화상을 수상하였다. 2001년 5월 12일 7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 목차
· 해방촌 가는 길
· 젊은 느티나무
· 강물이 있는 풍경
· 황량한 날의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