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이 정
처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제목을 보았을 때, 반어법의 표현인가 했다. 설마 천문학자가 진짜 별을 보지 않겠어? 뭔가 반전이 있는 건가? 그러나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너무 사실을 적시한 제목’이라고 했다는 인터뷰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실제로 천문학자들이 별을 보는 시간은 일 년에 며칠 정도밖에 되지 않고 관측을 주로 하는 관측 천문학자도 마찬가지. 나머지 시간은 그 결과를 분석하거나 다음 관측을 준비하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시뮬레이션 같은 걸 하는 분들은 망원경이라는 물건은 보았지만 망원경으로 별을 본 적이 전혀 없는 천문학과 교수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2019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미래의 달 과학에 기여할 차세대 과학자로 지목한 천문학자이다. 지금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 책은 그녀의 첫 수필집으로, 그게 뭔지도 모르고 ‘어쩌다’ 천문학자 된 한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담고 있다.
책에서 보여주는 천문학의 세계는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빛과 어둠과 우주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천문학자도 누구나처럼 골치 아픈 현실의 숙제들을 그날그날 해결해야 한다. 비정규직 연구자로서 영수증을 챙겨야 하고 다른 잡무 때문에 실제 연구시간이 부족한 모습은 직장을 다니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을 때의 모습을, 음악 취향이 다른 동생이 들려주는 음악을 이어폰을 차마 내던지지 못하고 억지로 듣는 언니의 모습과 비교하는 문장에서는 인간적인 모습에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에 관한 글 등에서는 우리나라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차별과 편견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뜬금없지만, 직업이 사서임을 말하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책 많이 읽으시겠네요’이다. 그러나 책 속에 둘러싸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비해, 정작 책을 읽는 시간은 많지 않다. 보이는 것과 달리 사서분야에도 여러 업무가 있어서 책을 접하지 않는 업무도 있다. 내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풀기 위해 항상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입장이면서도 결국 나또한 천문학자, 더 나아가 과학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과학자가 하는 일 중에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과학자도 에세이를 쓰는가 하는 것이다. (p.270)
많은 과학자들이 에세이를 써 주면 좋겠다. 선입견도 없애고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과학분야의 지식과 과학자의 일상을 알 수 있도록 말이다.
♣ 저자 소개 (저자: 심채경)
♣ 목차
프롤로그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1부. 대학의 비정규직 행성과학자
시간을 날아온 카시니
박사님이시네요
우리만의 유니버스
『실록』 베리에이션
시적 허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Re) 교수님께
2부. 이과형 인간입니다
즐기세요
발칙한 우주 산책
백 퍼센트의 별똥별
최고의 우주인
감정의 진폭
지구는 별이 아니다
관측하기 딱 좋은 날
인터뷰를 하시겠습니까
창백한 푸른 점
해 지는 걸 보러 가요
3부.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
우주와의 랑데부
우주를 사랑하는 만 가지 방법
하늘의 어디
수분受粉하는 여행자
잘 알려진 천문학사
잘 알려지지 않은 천문학사
4부. 우리는 모두 태양계 사람들
안녕, 고리롱
플라이 미 투 더 문
화성에서 만나요
명왕성이 사라졌다
계절이 지나가는 시간
여행길 음악
우리, 태양계 사람들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