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김진휘
서로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의 역경과 고난을 두고 볼 수 없어(답답함에 목이 막히고 닭살이 돋아) 로맨스 같은 달달한 영화는 여태껏 거부해 왔었다. 찾아본 적은 거의 없고 기껏 본 몇 편이라곤 죄다 학창 시절 자습 시간에 틀어준 것이 전부다.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본 영화가 <어벤져스>인 만큼 나의 영화 취향은 확고했다. 액션이든 SF든 그 안에 로맨스가 녹아 든 경우는 상관없지만, 주제가 아예 사랑이라면 일단 리스트에서 빼기 일쑤였다.
<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은 사랑과 관련된 영화와, 그 속에 담긴 음악 및 사운드를 저자 특유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문체로 소개하는 책이다. 영화 자체의 내용보다는 음악과 소리, 그로 인해 스며드는 감정을 조명하여 로맨스 기피 기질인 나에게도 거부감이 없었다. 또한 책에 소개된 영화 중 한두 편 정도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 아는 영화가 전무하다보니 오히려 나만의 감정과 느낌을 활자로부터 낚아 올릴 수 있었다. 아는 것을 마주하는 기쁨도 좋지만 미지와의 조우도 신나는 일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소리는 존 브라이언의 스코어에 녹아 있다. 조화롭게 들려오는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화음은 부드럽게 어울리다 서로를 비켜나기도 한다. 마치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감독은 그들이 즉흥적으로 이끄는 대로 가게 내버려 둔다. 그들을 막는 건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찾는 것도 그들이다.
그들은 깨닫는다. 몇 번이고 기억을 지워내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는 유일한 진실을. 사랑을 잊어버릴 수는 있지만, 아직 잃어버린 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사랑은 왜 이렇게 아픈 걸까. 누군가는 아픔이야말로 사랑의 증거라고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왜 항상 아픔을 동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피할 수 없는 아픔과 사랑, 그 중간에 있는 무수한 감정들은 영화에서 영상뿐만 아니라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로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비장한 음악이 있는가 하면 톡톡 두드리는 듯한 발소리, 심장소리, 잡다한 기계음들이 그렇다. 저자는 쉽게 흘려들었을 소리들의 의미를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전한다. 책 속 영화들을 본 적 없는 나로서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저자의 표현은 설득력 있고 사려 깊다. 읽는 동안 책장을 넘기는 소리마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시간, 그리고 사랑에 대해 한 번쯤은 눈 감고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고 싶은 수많은 청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덤같이 붙은 음악&영화 목록은 저자의 배려가 아닐까 싶다
♣ 저자 소개 (저자: 오성은)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영화, 음악, 그림, 커피, 와인 등 감각적이면서도 사색을 품는, 예술을 닮은 모든 것에 마음을 주는 심오한 감성쟁이이다. 중편 소설 〈런웨이〉로 등단했다. 단편영화 〈향수〉를 연출하고 각종 방송과 강의에서 음악을 포함한 모든 소리를 더 깊이 감상하는 ‘듣는 영화’로써 텍스트 읽기를 제안하는 영화쟁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소설을 쓰고, 영화를 깊이 듣는 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쓴 책으로는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 〈〈여행의 재료들〉〉과 중단편 소설에 〈런웨이〉, 앤소로로 〈〈미니어처 하우스〉〉에 참여했다. 현재 부산 가톨릭방송인 CPBC에서 〈별 다섯 개 영화 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 목차
prologue
intro, 사랑이란
13 바람이 말하길 사랑은 이 길로 올 거래요 _ 〈비포 선라이즈〉
19 사랑에 관한 모든 소리 _ 〈베티 블루〉
25 늦은 가을의 이야기 _ 〈만추〉
33 사랑은 지는 게임 _ 〈에이미〉
39 작고 환한 순결한 마음 _ 〈러빙 빈센트〉
당신의 자리 _ 〈라 비 앙 로즈〉
take 1, 사랑하거나
53 새로운 다리가 들려주는 오래된 연인들의 이야기 _ 〈퐁네프의 연인들〉
60 타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일 _ 〈타인의 삶〉
66 그녀가 작곡한 사진을 듣다 _ 〈그녀〉
74 미친 사랑의 뽕짝 _ 〈스토커〉 & 〈박쥐〉
84 우리는 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 _ 〈이터널 선샤인〉
90 우산 아래 숨은 사랑의 노래들 _ 〈쉘부르의 우산〉
97 어떤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춰야 하는 것처럼 _ 〈블루 발렌타인〉
104 아직 무도회는 끝나지 않았다 _ 〈아이즈 와이드 셧〉
111 그곳에 존재하는 하와이안의 노래_ 〈디센던트〉
118 간절히 부르는 그 이름들 _ 〈너의 이름은.〉
124 우리는 모두 당신의 친구 _ 엔니오 모리꼬네
take 2, 고독하거나
135 Almost Blue _ 〈본 투 비 블루〉
141 고독의 연주를 끌어안는 자, 토니 타키타니 _ 〈토니 타키타니〉
149 재능 있는 리플리메리카노 _〈리플리〉
158 도시의 마지막 구원자 _ 〈택시 드라이버〉
164 나 좀 고쳐주세요 _ 〈데몰리션〉
171 우울한 사랑과 실패할 열정 _ ‘문제없어요’와 〈그녀에게〉
177 길 위의 젤소미나 _ 〈길〉
183 그리고 세상은 이토록 고독하다 _ 〈아비정전〉
191 노크로 남은 순간 _ 〈노킹 온 헤븐스 도어〉
197 우리 각자의 라라랜드 _ 〈라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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