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립도서관 사서 최혜미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라는 문장을 쓰는 이가 바라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이 예전에 뭘 먹고, 뭘 입었는지를 연구한다는 ‘경제사’를 전공한 저자에게는 또 하나의 전공이 있다.
바로 ‘법경제학’. 사람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 범죄를 막으려면 형량을 얼마나 부과해야 하는지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그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이 책의 의도를 명확히 짚어주고 있다.
전체 6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삶과 죽음, 빈곤과 풍요, 재난 등 사회 혹은 역사와 관련 있어 보이는 현상들을 어떻게 경제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그 해답 또한 책에 있는데,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설명하는 주제의 글들 모두가 어쩐지 경제와 연관되어 있다. 사회와 사람의 활동이란 것이 결국에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생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책은 6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으나, 차례나 순서가 정해진 것은 아니므로 관심 있는 주제나 영역의 글을 먼저 읽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1부 삶과 죽음)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 「흥부와 놀부」에서 흥부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가장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흥부가 형인 놀부에 비해 가난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매사 성실하게 일함에도 말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흥부네 빈곤의 이유는 ‘다산’이다. 당시, 성인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전체 출생률의 5~60%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아들은 스물다섯이고 아씨야 말할 게 있나”라고 대답하는 흥부 가족의 구성원 수를 생각하면, 자식의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되는 복을 누림과 동시에 아이들의 굶주림을 목도 해야 했던 흥부의 역설적인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이외에도 흥미롭고, 일상에 유용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엄청난 질병에 노출되는 불운을 겪게 되면, 평생에 걸쳐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제3부 중 ‘재난의 경제학’에서 나오는 문장인데, ‘재난’이라는 단어에서 퍼뜩 무언가 떠올랐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 같은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질병(전염병)의 시대. 남은 평생이 살아온 날에 비하면 얼마 안 될 테니까 하는 무책임한 말보단, 지금 그리고 앞으로를 살아갈 세대를 위해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한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시대를 읽어나가며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독서를 통해)알아간다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자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어간 뒤, 책장을 덮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왜 선택했더라?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라는 책의 제목도 본문 안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어떤 것이 사라져 가는지, 어찌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마는지는 읽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제목으로 채택된 것에 대한 의미는 완독 후에 오는 것 같다. ‘사라지는 것’. 그것은 어떤 현상 혹은 대상 또는 사람과 같은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사라져서 남기는 것이 아쉬움이라면, 앞으로 사라져갈 우리는 어떤 아쉬움을 남기게 될까. 단순히 감상적인 태도가 아닌, 과거로부터 학습하고,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알아가야 할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저자 소개 (저자: 김두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대학 UCL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 UC Davis, 한국개발연구원 KDI을 거쳐 현재는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아시아역사경제학회Asian Historical Economics Society 회장을 역임하고, 아시아법경제학저널 Asian Journal of Law and Economics 부편집장, 한국법경제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경제성장과 사법정책』 『한국경제사의 재해석』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이 있다. 이 밖에도 경제사와 법경제학 관련 논문들을 국내외 학술지에 다수 게재했으며 다양한 관련 정책 연구를 수행했다.
♣ 목차
머리말 8
제1부 삶과 죽음
흥부의 역설 13
새로운 악당이 필요하다 18
사랑할 나이, 결혼할 나이 21
조선시대 양반 여성의 출산율 27
부모로서의 왕과 왕비 34
성전환과 성감별 40
최고 통치자의 임기 45
행려사망자 51
제2부 빈곤과 풍요
키 59
소중한 성취, 소득 3만 달러 64
잊힌 원조 67
1950년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출발점 73
수출진흥확대회의 80
철도를 통해 본 북한경제 침체의 원인 86
방글라데시, 세계화 그리고 북한 92
제3부 재난과 경기 침체
재난의 경제학 97
노예무역이 21세기 아프리카에 남긴 유산 102
세계경제 침체와 국제 공조 108
보호무역 112
대공황에 대한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 117
마이너스 은행 금리 122
제4부 시장이라는 불가사의
이퀼리브리엄 129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5일장의 성쇠 133
국제무역 138
스크린 독점과 차별적 상영 배정 142
순번과 순위: <나는 가수다>의 경제학 147
동문 효과 152
담뱃세 논쟁: 말을 마차 앞으로 가져와야 157
제5부 시장과 제도
애덤 스미스는 시대착오적? 165
수목금토일일일 170
‘골드스미스’와 ‘실버스미스’ 175
한시노예 180
빚과 벌 184
파산, 어제와 오늘 187
회사 제도 192
제6부 재산권과 사법
민둥산 199
분쟁, 소송 그리고 경제성장 204
법원의 살림살이 210
골프장 부지를 마련하는 두 가지 방법 213
죄와 벌: 우리나라 법령에 규정된 형벌의 범위와 수준 219
징벌적 손해배상 226
최소선발인원 232
법률시장 개방 그리고 그 이후 236
제7부 교육, 대학, 연구
문리와 수리 245
역사학과 머신러닝 248
증거기반 정책 251
정보는 꿰어야 보배 254
연구의 선진화 257
우울한 미래 260
학술지 평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 263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267
입시정책이 아니라 대학정책이 필요하다 270